개정 9판을 내면서
2018년은 한반도 주변 환경이 급변한 시기로 한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한 해로 기록됐다. 북한의 핵개발을 중단시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4차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고, 정전협정의 주역인 북한과 미국도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의 의중을 파악했다.
미국의 중재로 우방관계를 유지하던 일본과는 위안부, 강제징용 노동자 등의 배상문제와 동해에서 군사적 충돌로 인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과도 사드 갈등으로 시작된 경제제재의 피해가 가시화되면서 한국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자국의 첨단기술을 훔치고 지적재산권을 침해한다며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한반도는 20세기 초와 마찬가지로 주변 강대국의 침탈야욕과 대리전쟁의 도화선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이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국가정보기관과 국가정보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변하고 있어 국가정보기관이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북한뿐만 아니라 주변 강대국의 군사적 위협과 더불어 경제전쟁의 전선이 확대되면서 국가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에서 시작된 경제 혼란이 중동과 아프리카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가 유행을 타고 자원민족주의가 발호하는 와중에 터진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글로벌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한국의 전자,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도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국내경제에 주름살을 늘리는 수준을 넘어 짐으로 전락했다. 자영업이 몰락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청장년 실업도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지 오래됐다.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신산업을 창출하고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필요한 경제정보활동을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하는 이유다.
둘째, 국가정보의 목표가 변화되는 것과 보조를 맞춰 개별 정보기관은 환골탈태 수준으로 각오를 재정립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정보에 한정된 정보목표를 글로벌 국가로 확장하지 않으면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도 없다.
국내정치에 휘둘려 본연의 임무보다는 일탈행위에 전념한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국가정보원, 기무사, 사이버사 등 핵심 정보기관은 명칭 변경과 해체 후 재편이라는 치욕을 당했고, 전·현직 수장과 다수의 직원들은 사법처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국민으로부터 절대적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권력과 권위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을 적으로 간주해 투쟁한 정부와 지도자가 장기간 생존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셋째, 국가정보학의 심층적 연구와 발전이 없다면 정보기관의 부흥과 직원들의 역량개발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역사 이래 모든 산업과 조직은 학문적 연구와 이론정립의 기반 위에서 성장하고 꽃을 피웠다. 선진국 정보기관이 국가정보학을 연구와 확산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국내에서 국가정보학에 대한 연구가 태동한지 10년 이상이 흘렀지만 연구 성과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고, 관련자들의 노력도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보전문가의 육성은 불가능해졌고 정보인의 자부심과 사회적 평판도 진흙탕에 내팽개쳐졌다.
저자도 국가정보학의 이론적 체계정립과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학자들도 서로 베끼는 수준의 책과 논문을 양산하기 보다는 선진학문을 받아들여 국내에 소개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연구할 자료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열정과 호기심이 없는 것이 국가정보학 연구가 지리멸렬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넷째, 국가정보학의 응용분야가 국가정보기관뿐만 아니라 기업, 대학, 개인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국가 전체의 경쟁력 확보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는 수백 개 대학에 관련 강좌가 개설될 정도로 연구가 활발한 실정이다. 한국은 일부 정보기관 퇴직자들이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누구의 문제라기보다는 국가정보학의 성장잠재력을 확신하지 못한 대학과 교육당국에 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관련자들이 모두 합심해 국가정보학을 응용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정보활동 노하우가 기업과 개인에게 적용할 경우에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연구하면 경제적 이익실현을 통해 실용화라는 과제를 완수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다섯째, 군무원이나 국정원에서 출제하는 시험문제가 국가정보학의 발전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시험은 다수의 지원자 중에서 소수를 선발하기 위한 과정이지만 최소한 국가정보학 시험은 지원자를 떨어뜨리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험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학문적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나 새로운 이론을 파악할 수 있도록 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험생은 정보기관에서 필요한 인재이기도 하지만 국가정보학의 발전과 저변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재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소중한 자원을 잘 확보해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초창기부터 국가정보학을 연구하고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조차도 풀기 어려운 문제도 종종 출제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한국의 대학과 학문이 망해가는 것도 학생들의 우열만 가리만 된다는 평가위주의 시험제도가 주요인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가정보학만큼은 이런 폐습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갖고 있는 소신이다.
위와 같은 노력이 실현된다면 국가정보기관과 정보인 모두가 희망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9년 들어 정보인으로 살아온 나날들을 반추해 보면서 업계의 선배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했고 국가정보학의 발전을 위한 주춧돌 중 하나가 되고자 결심했다. 수험생들도 단순히 국가정보학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생각을 넘어 정보전문가로서 인생을 살기 위한 출발선에 섰다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
2019년 1월 30일
민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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