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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 해당되는 글 3건


지리산에서 가을을 보낸 지도 벌써 한 달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로 정신 없이 보냈는데, 마지막도 부산하다. 처음에 내려 올 때는 계획도 많았는데, 제대로 해본 것이 하나도 없다. 누군가 계획은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세운다고 했는데, 그 말이 내 상황에 너무 맞는 것 같다. 무수한 계획이 부서지면서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였다. 일을 하면서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하였지만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몇 가지 주요 교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무슨 일이던 배우기는 어렵지만 제대로 된 스승만 찾으면 배우기란 쉽다. 아무리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일이라도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제대로 하기란 어렵다. 가장 좋은 방법이 그 일을 가르쳐 줄 선생님을 찾는 것이다. 물론 능력이 뛰어나고 천재라고 한다면 스스로 알아서 깨우치겠지만 남으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나는 천재가 아니라서 일을 가르쳐줄 사람을 찾았고, 다행스럽게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위에는 마음만 먹고 찾는다면 어떤 분야이던 자신을 가르쳐줄 스승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모든 스승이 번듯한 직장에 박사학위를 가질 필요는 없다. 단지 자신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으면 족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입견으로 스승을 찾기 때문에 제대로 된 스승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는 우선 선생님이 하는 말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 안다고 나의 짧은 지식으로 가르쳐 주는 내용을 재단하거나 해석하면 오히려 시간이 더 든다. 많은 사람들이 시건방지게 가르쳐주면 자신이 조금 아는 지식으로 참견을 하거나 훈수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가르쳐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장 견디기 힘든 모욕이다.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게 마련이고 그 감정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성인군자가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기 어렵다. 기분이 나쁘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분야에서 초지일관 전문적인 능력을 키워온 사람이라면 더욱 배우는 사람의 자세를 따진다. 우선 인간이 되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의 중요성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하고 싶다. 속담에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말이 있다. 시간만 지나면 당연하게 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던 시간만 보내면 된다. 그러나 고용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어진 인력과 시간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일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모르더라도 리더십은 없어서는 안 된다. 일은 하면서 배우면 된다.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리더십은 일을 배우는 것처럼 쉽지 않다. 천성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아무도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해야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한다. 일반적으로 조직의 리더들은 반대로 한다. 자신은 깨끗하고, 안전하고, 쉬운 일만 하려고 한다.

지리산에서 한 달은 나에게 매우 의미가 깊다. 요즘처럼 바쁜 시절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르지는 않았는지 내심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고 본다. 관련자들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던 것들도 특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이제 그동안 미루어두었던 많은 일을 처리해야겠지. 책의 교정도 봐야 하고, 틈틈히 정리해두었던 원고도 다듬어서 책도 내야 한다. 몸은 지리산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서울에 있었고 무엇인가 걱정거리를 가지고 고민을 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할 필요조차 없었던 걱정거리를 가지고 고민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아직도 깨달음을 얻기까지 너무 먼 길이 남은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보려고 한다.



요즘 단풍이 유난히도 곱다. 설악산에는 단풍이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하는데, 남쪽 지리산에는 단풍이 많이 남아 있다. 올해 무슨 복이 터졌는지, 고향 지리산 근처에서 가을을 보내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한달 간이다. 어릴 적 떠난 후 수십 년간 명절에만 가끔씩 힐끔 쳐다보고 지나쳤는데 올해는 평생 볼 지리산 풍경을 다 보는 것 같다. 수십 년 객지 생활로 어머니도 자주 뵙지 못했는데, 이 참에 매일 매일 뵙게 되어 다행이다.

일이란 것이 단순해서 머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도 좋은 점이다. 그동안 책을 쓰니 강연을 하니 하면서 머리가 복잡했는데, 며칠 단순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머리가 가벼워졌다. 일과 관련된 까다로운 감독관이 있지만 그래도 그 양반 덕택에 일에 집중하느라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나쁜 점이 있으면 그 만큼 좋은 점도 있는 모양이다. 벌써 한 달여 같이 티격태격 거리다 보니 미운 정 운 정이 들게 된다. 본시 천성이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지리산 자락을 감고 도는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지리산 계곡을 올라간다. 어떤 날은 안개가 자욱이 끼었고, 어떤 날은 오늘처럼 가을비가 부산히도 내린다. 어떤 날은 새벽에 지는 달을 보면서 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동쪽에 해가 떠올라 해와 달을 동시에 보기도 한다. 어릴 적 농사지을 때를 빼면 이렇게 새벽부터 움직이기는 처음이다. 산을 오르면서 막 떠오르는 해에 비친 붉은 단풍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들판에는 농부들이 수확한 볏짚을 묶으면서 아침 해를 맞는다. 지리산 가을은 운해가 자주 끼지는 않지만 가끔씩 비 온 후에 끼는 운해는 멋지다.

오전에 일 좀 보고 섬진강 재첩국이 맛있다고 해서 여러 집을 순례했지만 내 입에 딱히 맞지는 않는다. 하동에 오면 꼭 원조 재첩국을 먹어야지 결심을 하였지만, 한달 째 제대로 된 집을 찾지 못했다. 내가 운이 없는 것인지, 옛 맛을 지키는 집이 없는지 모르겠다. 바닷물이 하동까지 올라오면서 섬진강에서 재첩이 많이 잡히지 않아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후변화가 이런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한다. 좋은 재첩이 잡히지 않아 재첩국이 맛이 없는 것인지, 정성 들여 재첩국을 끊이는 사람들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재첩국에 실망은 하였지만 섬진강변을 따라 잘 정돈된 차 밭을 보면서 이국적인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오후에 내려오면서 구례에서 다슬기 탕과 다슬기 수제비를 먹었는데, 이 놈은 맛이 제대로 있었다. 요즘 다슬기 철이 아니라서 여름에 잡은 다슬기를 냉동실에 넣었다가 해동해서 쓴다고 하는데, 맛을 제대로 났다. 하동과 구례가 경계인데, 음식맛은 너무 많이 차이가 난다. TV에 많이 나오는 집에서 먹은 다슬기 탕은 실망이 컸고, 동네 주민들이 추천한 다슬기 수제비집은 다음에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을 정도로 많이 있었다. 이미 상업화된 집에서 깊은 맛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비도 부슬거려서 하동 솔잎 한우집을 들렀다. 몇 번이나 지나쳐 가면서 언제 한번 들러서 먹어야지 하였는데, 오늘 마침 시간이 났다. 손님도 많고 방송국에 근무하는 친구가 추천을 하기도 해서 들렀지만 대실망이었다. 고기는 질겼고, 음식도 형편없었다. 지천에 늘린 것은 푸성귀이고, 질 좋은 쌀일 것인데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반찬도 무성의하고, 밥은 질고 퍼져서 먹기에 힘들었다. 소문난 집에 먹을 찬이 없는 셈이었다.

출장을 다니고 객지를 떠돌아다니는 것은 힘든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견디게 하는 것이 철 따라 찾아 먹는 향토음식인데, 이번 출장은 영 아니다. 눈은 즐거웠지만, 입은 조금도 즐겁지 아니했다. 그래도 지리산 구경은 실컷 했으니 만족한다. 산청과 함양, 남원 쪽 지리산은 계곡 계곡 많이 돌아다녔지만, 하동과 구례 쪽은 많이 다니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가 너무 좋았다. 산은 좋은데, 사람과 음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여정이었다. 좋은 산천에 사람마저 좋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요즘 나라가 시끄럽고 경제가 어려워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개인적으로도 복잡한 일이 많았는데, 지난 주에 가까운 후배가 강원도 속초에서 휴가 보내고 있는데 바다 바람을 쐬러 오라고 해서 주저 없이 속초행 고속버스를 타게 되었다. 출퇴근 하면서 매일 지나다니는 강변역 동서울터미널에 가서 속초행 막차를 탔다. 서울은 날씨가 맑았지만 강원도 접경에 접어들면서 안개가 끼었고 대관령을 넘어가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 파도가 쉼 없이 부서지는 속초 해변에서 밤 하늘의 초롱초롱한 별을 보면서 캔맥주 한잔 하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대신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 횟집에서 제철인 오징어 회에 병맥주만 마셨다. 해변이 아닌 횟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어 처진 기분도 이런저런 세상사는 이야기 속에 사라져 버렸다.‘마음 속의 부처라고 세상의 모든 행복과 고통, 걱정이 모두 내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 새벽녘에 해변을 거닐면서 거칠어진 해변의 파도소리 속으로 근자에 가졌던 근심을 실어 보냈다. 가끔씩 자연 속으로 돌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는가 싶다.

다음 날 새벽부터 비가 내렸지만 간밤의 숙취를 해소하기 위해 속초의 명물인 곰치로 끓인 곰치국인, 물곰탕을 먹으러 갔다. 20여 년 전 속초에 머물렀을 때 자주 먹으러 갔던 속초 시장의 단골집을 찾아 갔지만 없어졌다. 시장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요즘 곰치가 안 잡혀서 시장통에 있던 집들은 전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동명항 근처에 전통식으로 곰치국을 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사돈집(033-638-0915)’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이미 가게 안에는 간밤의 술에 찌든 주당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벽에는 물곰탕을 예찬하는 지역 시인의 글이 걸려 있었다. 속초 인근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했다는 시인도 나처럼 술을 좋아했는지 시원한물곰탕의 매력을 잊지 못한 듯 구절마다 찬양 일색이다.

곰탕을 한 그릇 시원하게 비우고 나니 기분이 개운해졌다. 관동팔경이라는 청간정에도 올라보고 영랑호 근처 바위에도 올라가 보고 숲 속을 산책도 하였다. 속초는 20년 전과 비교해서 단지 청초호에 다리가 생긴 것을 빼고는 발전된 곳이 하나도 없어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갈 수가 있었다. 속초의 매력은 산과 바다가 같이 있다는 것인데, 구름과 해무에 뒤덮힌 설악산은 흔적조차 볼 수가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미시령 옛 고개길을 넘어면서 속초 해안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해무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고개를 넘자 날씨는 다시 맑아졌고 간밤에 비도 오지 않은 듯 전혀 딴 세상이 되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30년 이상 공직에 계시다가 정년퇴직하여 강원도 인제 버스터미널 앞에서 하늘 내린 황태구이집(033-461-5400)’을 하시는 옛 지인을 만나러 갔다. 90년대 초반에 속초에서 머물 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니 20여 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진부령 고개에서 말리는 황태가 일품인데 요즘은 중국에서 말린 황태도 들어오고, 러시아에서 말린 황태까지 강원도 골짜기에 들어온다고 한다. 중국산은 흙 냄새가 나고 러시안산도 약간 묵은 내가 난다고 하는데 먹어보지 못했으니 구분을 할 수는 없었다. 상위에 오른 각종 산나물과 야채는 직접 산에서 손수 채집하였거나 재배한 것이라고 했다. 취나물이며 두릅 등 각종 산나물과 텃밭에서 재배한 야채로 만든 반찬과 강원도 청정쌀로 지은 밥이 새하얀 이천 도자기에 담겨서 배고픈 나그네를 정갈하게 맞았다. 정성이 깃든 진수성찬으로 잘 대접받았다. 직접 채취하고 재배한 산나물과 야채로 상을 차린다는 소문에 설악산 등산을 다녀오는 등산객 일행들이 방은 가득 메우고 주인장과 산 얘기를 하느라 부산하였다.

복잡하고 삭막한 서울에서 살면서 고향 지리산을 항상 그리워하지만 멀다는 핑계로 잘 가지 못하는데, 이번 여름에는 꼭 한번 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공미가 가미된 것보다 풋풋하고 세련되지 못하지만 자연 그대로가 좋고, 번잡한 도심보다는 한적한 시골이 더 마음에 든다. 그 분도 강원도 인제가 고향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고, 그 곳에서 자란 자식들의 고향이니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20년 전의 코흘리개 아들은 벌써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씩이나 두고 원통에 살고 있었다. 새삼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간만에 정신이 맑아지고 유익한 강원도행이 아닌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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