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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단풍이 유난히도 곱다. 설악산에는 단풍이 이미 다 떨어졌다고 하는데, 남쪽 지리산에는 단풍이 많이 남아 있다. 올해 무슨 복이 터졌는지, 고향 지리산 근처에서 가을을 보내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한달 간이다. 어릴 적 떠난 후 수십 년간 명절에만 가끔씩 힐끔 쳐다보고 지나쳤는데 올해는 평생 볼 지리산 풍경을 다 보는 것 같다. 수십 년 객지 생활로 어머니도 자주 뵙지 못했는데, 이 참에 매일 매일 뵙게 되어 다행이다.

일이란 것이 단순해서 머리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도 좋은 점이다. 그동안 책을 쓰니 강연을 하니 하면서 머리가 복잡했는데, 며칠 단순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머리가 가벼워졌다. 일과 관련된 까다로운 감독관이 있지만 그래도 그 양반 덕택에 일에 집중하느라 잡생각이 들지 않는다. 세상에 나쁜 점이 있으면 그 만큼 좋은 점도 있는 모양이다. 벌써 한 달여 같이 티격태격 거리다 보니 미운 정 운 정이 들게 된다. 본시 천성이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지리산 자락을 감고 도는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지리산 계곡을 올라간다. 어떤 날은 안개가 자욱이 끼었고, 어떤 날은 오늘처럼 가을비가 부산히도 내린다. 어떤 날은 새벽에 지는 달을 보면서 강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동쪽에 해가 떠올라 해와 달을 동시에 보기도 한다. 어릴 적 농사지을 때를 빼면 이렇게 새벽부터 움직이기는 처음이다. 산을 오르면서 막 떠오르는 해에 비친 붉은 단풍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들판에는 농부들이 수확한 볏짚을 묶으면서 아침 해를 맞는다. 지리산 가을은 운해가 자주 끼지는 않지만 가끔씩 비 온 후에 끼는 운해는 멋지다.

오전에 일 좀 보고 섬진강 재첩국이 맛있다고 해서 여러 집을 순례했지만 내 입에 딱히 맞지는 않는다. 하동에 오면 꼭 원조 재첩국을 먹어야지 결심을 하였지만, 한달 째 제대로 된 집을 찾지 못했다. 내가 운이 없는 것인지, 옛 맛을 지키는 집이 없는지 모르겠다. 바닷물이 하동까지 올라오면서 섬진강에서 재첩이 많이 잡히지 않아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후변화가 이런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한다. 좋은 재첩이 잡히지 않아 재첩국이 맛이 없는 것인지, 정성 들여 재첩국을 끊이는 사람들이 없어졌는지 모르겠다. 재첩국에 실망은 하였지만 섬진강변을 따라 잘 정돈된 차 밭을 보면서 이국적인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일을 마치고 오후에 내려오면서 구례에서 다슬기 탕과 다슬기 수제비를 먹었는데, 이 놈은 맛이 제대로 있었다. 요즘 다슬기 철이 아니라서 여름에 잡은 다슬기를 냉동실에 넣었다가 해동해서 쓴다고 하는데, 맛을 제대로 났다. 하동과 구례가 경계인데, 음식맛은 너무 많이 차이가 난다. TV에 많이 나오는 집에서 먹은 다슬기 탕은 실망이 컸고, 동네 주민들이 추천한 다슬기 수제비집은 다음에 가족을 데리고 오고 싶을 정도로 많이 있었다. 이미 상업화된 집에서 깊은 맛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비도 부슬거려서 하동 솔잎 한우집을 들렀다. 몇 번이나 지나쳐 가면서 언제 한번 들러서 먹어야지 하였는데, 오늘 마침 시간이 났다. 손님도 많고 방송국에 근무하는 친구가 추천을 하기도 해서 들렀지만 대실망이었다. 고기는 질겼고, 음식도 형편없었다. 지천에 늘린 것은 푸성귀이고, 질 좋은 쌀일 것인데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반찬도 무성의하고, 밥은 질고 퍼져서 먹기에 힘들었다. 소문난 집에 먹을 찬이 없는 셈이었다.

출장을 다니고 객지를 떠돌아다니는 것은 힘든 노동이다. 이런 노동을 견디게 하는 것이 철 따라 찾아 먹는 향토음식인데, 이번 출장은 영 아니다. 눈은 즐거웠지만, 입은 조금도 즐겁지 아니했다. 그래도 지리산 구경은 실컷 했으니 만족한다. 산청과 함양, 남원 쪽 지리산은 계곡 계곡 많이 돌아다녔지만, 하동과 구례 쪽은 많이 다니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가 너무 좋았다. 산은 좋은데, 사람과 음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여정이었다. 좋은 산천에 사람마저 좋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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