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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국새는 민홍규가 전통기법으로 만들었다"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 출간

“민홍규는 여론재판의 희생양…골프업자와 제작단원들이 합작한 음모”

 

세불 민홍규와 그가 복원한 고종조 옥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민홍규는 조선조 옥새 73과 중 40여과를 복원했다.
 
2008년 8월 대한민국 언론과 사법기관은 한 사람을 마녀사냥했다.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든 세불(世佛) 민홍규(60)는 전통국새 제작 비법을 보유한 동양 3국(韓·中·日)에서 유일한 ‘옥새전각장’에서 하루아침에 파렴치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언론은 그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렸고, 그 금으로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언론계에 로비용으로 돌렸다고 보도했다. 또한 전통국새를 만드는 비법도 없으면서 마치 있는 것처럼 속여 국새 국민공모에 당선됐고, 4대 국새 제작단장이 됐다고 보도했다. 수사기관은 언론 보도를 뒤따라가며 속전속결로 수사를 진행해 민홍규를 사기죄로 구속했다. 3년형을 선고받은 민홍규는 2013년 9월 만기 출소했지만, 그가 만든 ‘완벽한 국새’로 평가받던 4대 국새는 폐기돼 국가기록원 수장고에 고이 잠들어 있다. 과연 진실은 뭘까.


대한민국 4대 국새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담은 <누가 국새를 삼켰는가-우리가 모르는 대한민국 4대 국새의 비밀>(도서출판 글로세움)이 책으로 나왔다. 4년여 동안 사건의 진실을 천착한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이 펴냈다. 2013년 한국기자협회가 공모한 ‘취재 이야기’에서 당선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 게이트’를 저본으로 경찰의 조서와 진술서, 검찰의 기소문, 법원 판결문,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접근했다.

국새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짜증나 있던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국새사건은 민홍규 국새제작단장이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언론보도로 시작됐다. 여기에 600년 비전(秘傳)이라는 전통기술이 없으면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국새에 버젓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넣었다는 데에 이르러 여론은 절제력을 잃었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났다. 민홍규는 파렴치한 사기꾼이고 국가를 농단한 국사범이 돼 있었다. 민홍규 관련 기사와 수사는 국새제작단의 주물보조를 지낸 제보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홍규에게 제기된 의혹은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보도됐다. 대부분의 언론은 최소한의 확인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민홍규의 입장이나 진술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수사는 제보자의 진술을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수사기관이 그 뒤를 따라 확인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은 여론이 들쑤셔놓은 일을 뒤치다꺼리하는 수준이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태다. 냉정한 이성과 법리가 지배해야 하는 법정은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

민홍규가 산청 국새전각전 대왕가마에 불을 넣고 있다. 시뻘겋게 불이 타들어감에도 이창수와 경찰 검찰은 불이 안 들어가는 가짜 아궁이라고 주장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소조차 안 됐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검찰 스스로 여론에 끌려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국새사건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민홍규가 국새제작단에 주물보조공으로 고용한 이창수였다. 이창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창수는 국새제작단에서 15일 일하고 급여로 126만 원을 받은 말마따나 보조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4대 국새 공모전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작가는 민홍규이고, 국새제작단장도 민홍규였다. 주물보조에 불과한 국새제작단의 일개 단원이 국새를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수사해 기소했고, 재판부는 그렇게 판결했다. 취재도 엉터리, 수사도 엉터리, 판결도 엉터리였다.
대한민국 1대 국새를 만든 석불 정기호 선생이 민홍규가 옥새동장전각 전수를 잘 마쳤을 때 ‘세불’이란 호를 내리며 써준 춘서.


제보자 이창수는 방송 인터뷰, 경찰·검찰에서의 진술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술을 번복하였다. 이창수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년 12월 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국새사건의 진위를 결정하는 핵심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민홍규가 제출한 수십 장의 사진으로 금세 확인된다. 그럼에도 이창수는 사진의 날짜가 조작되었다며 부인했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의뢰한 결과 ‘조작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민홍규를 구속했다.

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어 유명해지자 그 밑에서 일하던 보조들이 골프퍼트 제작업자와 짜고 민홍규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거부하자 민홍규를 제거하고, 민홍규의 스펙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꾸미면서 불거졌다. 여기에 4대 국새 제작 백서를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돼 있다. 이창수는 민홍규가 설계해 주고 자신이 주물한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조선조 옥새 복원 등 민홍규의 이력을 도용했다. 민홍규를 제거한 이유가 자신이 국새를 만든 장인이 돼 그 스펙을 이용해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과 검찰이 사기로 몬 롯데백화점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도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6년 재료비만 30억 원어치가 투입된 진짜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전시회였고, 두 번째는 2009년의 인조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였다. 2006년 전시품은 맞춤 주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S씨의 이름이 새겨진 진품인 반면, 2009년 전시품은 민홍규가 훗날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만든 이미테이션 작품이다. 밑면에는 ‘세불문화재단’이라 새겨져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작해 주려 했던 것을 수사기관이 200만 원짜리를 40억 원에 팔려고 했다며 사기로 단정했다.

2002년 6월 15일 민홍규의 경기도 이천 공방을 찾아온 목불 정민조(왼쪽).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모른다. 그는 아버지 석불의 제자가 아니다”고 허위진술했다.

경찰과 검찰은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가 무죄로 밝혀지자 민홍규를 ‘전통기술 부재’로 몰아갔다. 민홍규를 기필코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종의 미션수행하는 듯했다. 민홍규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공개 시연’을 주장했다. 시연만 해보면 금세 진실이 판가름 날 간단한 일을 경찰과 검찰, 재판부는 기를 쓰며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 뭔가 거대한 권력이 뒤에서 조종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홍규는 수감 중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며 출소 후에 공개 시연을 하겠다고 담담해 하며, 3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13년 9월 출소했다.

민홍규가 갖고 있는 국새 제작 전통기법은 거푸집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석고로 하는 현대기법과 달리 전통기법의 재료는 진흙이다. 석고거푸집은 섭씨 1,000도 이상 가열하면 깨지지만, 진흙거푸집은 2,000도 이상 가열(소성)해도 깨지지 않는다. 전통 항아리처럼 숨을 쉬는 진흙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이창수와 검찰이 비법인 양 주장하는 주물은 녹은 액체를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비법과는 거리가 멀다.
경기도박물관 옥상에 민홍규가 설치한 전통국새 제작용 ‘대왕가마’.

제보자들이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민홍규가 가진 ‘비법’이었다. 하지만 민홍규는 목숨보다 소중한 비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차라리 교도소를 가더라도 비법은 공개할 수 없었다. 민홍규는 “백악관이 코카콜라를 주문하면 코카콜라만 납품하면 되지, 코카콜라 비법까지 알려줄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국가가 한 장인에게 국새 하나를 주문하고 그 비법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그것은 공권력의 횡포다. 범죄나 다름없다.

민홍규는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초대 국새 제작자 석불(石佛) 정기호(1899∼1989) 선생으로부터 국새 전통주물기법을 전수받았다. 수십 년 동안 부단한 실험을 통해 전통주물기술을 복원하여 완성했다. 조선시대 옥새 73과 중 40여 과를 복원해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전에도 후에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민홍규밖에 없다.

석불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모른다.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석불 정기호가 만든 1대 국새에 관한 모든 기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옥새전각장 계보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석불 유고집인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오래된 옥새에 관한 정씨의 그림)를 자신이 아닌 제자 민홍규에게 물려준 데 대해 오해와 누군가의 이간질로 화가 단단히 났기 때문이다.
민홍규가 만든 삼족오 옥새. 기품이 다르다.

국새사건은 정치적 성격도 있다. 이명박정부가 민간인 사찰과 4대강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행정안전부는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참여정부 때 만든 국새를 의도적으로 폐기처분하려 한 저의가 읽혀진다. 국새가 제작되던 2007년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한명숙 총리와 정동영 장관, 이미경 의원을 겨냥한 표적수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재판이 한창 진행중이던 2011년 4.27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분당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검사는 민홍규에게 “손학규한테 금도장을 바쳤다고 하면 수사 자료를 모두 소각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당시 정부가 민홍규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 명백히 드러난 사례다. 앞서 한 검사는 민홍규한테 “나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옥새를 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충고한 일도 있다.

국새는 민홍규가 만들었지만 대한민국의 상징물이다.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다.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국새를 가지고 장난친 이번 사건의 연루자들은 반드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엄벌해야 한다. 민홍규가 만든 4대 국새가 폐기 처분된 이후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엔 국난에 가까운 변고들이 잇따르고 있다. 이창수 등이 이 사건을 모의할 때인 2010년부터 대충 헤아려도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장거리 로켓 은하3호 발사, 3차 핵실험 등이 있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우면산 산사태, 태안 해병대캠프 고교생 참사,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 대학생 참사, 세월호 침몰 등 대형 참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4대 국새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는 이유이다.

책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경찰·검찰·재판부의 엉터리 수사의 문제점, 허위의식 등을 고발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정부기록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4대 국새의 권위를 회복하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민홍규의 작업실인 경기도 이천 공방. 대문 손잡이도 전통국새 모양이다.

민홍규 재판 때 무료변론에 나섰던 박찬종 변호사는 에필로그를 통해 “나는 민홍규의 무죄를 확신한다.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를 배척한 사법부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 몇몇 사기꾼들의 어설프고 조잡한 모함에 놀아난 수사기간에 부끄럽게 여기고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23년 동안 판사를 역임한 황종국 변호사는 “변론을 하며 이 사건은 배후에서 누군가가 진두지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홍규 선생이 어떤 인물이며 얼마나 원대한 뜻을 4대 국새에 담았는지 이 책과 곧 나올 ‘터’(민홍규 지음)를 통해 알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구치소 교정위원을 지낸 안현수 수지광성교회 담임목사는 “구치소에서 만난 민홍규 선생의 얼굴에서 진실함과 순수성을 느꼈다. 언젠가 그의 무고함이 밝혀지리라 믿는다. 진실은 끝내 승리한다”는 추천사를 보내왔다.

한편, 민홍규는 옥중에서 집필한 ‘터’(원 제목은 ‘등자울’)를 통해 경남 산청에 국새전각전을 짓고 4대 국새를 만든 이야기부터 국내 최대 기(氣)바위로 알려진 석경, 귀감석, 복석정 등을 발굴하고 터를 잡는 과정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출처 : 세계일보] [도서안내 : 누가국새를 삼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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