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수험신문 · 고시위크 | 2018.09.18 12:38 입력
국정원 공무원은 대부분 7급 공채로 입사해 은퇴까지 평생을 한 직장에서 보내게 된다. 국정원 직원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는 자주 소개됐지만, 대학 졸업생이 국정원 직원이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 것은 2013년 초에 방영된 MBC수목드라마 ‘7급 공무원’이 거의 유일하다.
2009년 김하늘 주연의 영화 ‘7급 공무원’이 드라마 ‘7급 공무원’의 원작으로 필자도 김하늘의 코믹연기에 반해 영화를 재미있게 관람했다. 같은 해 상영한 이병헌과 김태희 주연의 KBS2 TV드라마 ‘아이리스’는 한국과 북한의 전쟁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첩보원의 활약상을 담았다.
2013년 드라마 ‘7급 공무원’을 준비하던 방송작가가 국정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수험생이 본다는 책의 저자를 초빙해 자문을 받기로 했다며 필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개인적으로 2009년 상영된 영화 ‘7급 공무원’이 흥미거리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촬영되면서 현실과 너무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국정원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제대로 담자고 판단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와 협의해 남자 주인공인 주원이 다른 수험생과 마찬가지로 공채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도 다니고, 카페에서 당시 핫(hot)한 시험과목인 ‘국가정보학’ 책을 보면서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듣는 장면도 넣었다.
당시 주원은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민진규 국가정보학’ 책을 갖고 다니며 공부하고, 카페에서 필자가 강의한 동영상을 태블릿으로 듣는 방식으로 시험을 준비해 합격한다. 7급 직원을 비밀로 채용하는 것과 달리 공개채용으로 전환되면서 대학생들이 수험 준비하는 방식을 반영한 결과다.
▶ 정보적격성검사(NIAT)와 논술시험의 특징
국가정보원 7급 공채 시험은 1990년대 중·후반까지는 국사와 국민윤리를 논술형식으로 출제하다가 종합교양, 국가정보학 등으로 확장했다. 이후에 종합교양과 국가정보학 등을 통합해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라는 과목을 신설하는 등 변화를 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일반 학생들이 생소하게 생각하는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는 일반 대기업, 공기업 등이 도입한 직무적성검사 시험과 유사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논술도 제시문을 거쳐 논제만으로 글을 쓰는 통합 논술로 바뀌었다. 현 국가정보원 7급 공채의 시험과목과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은 언어, 수리, 추리, 지각능력, 직무마인드 등을 평가한다. 국가정보기관 직원으로서 정보 역량을 갖췄는지 판단하기 위해 도입한 과목이다. 2014년 처음 도입된 이후 5년정도 출제된 문제를 파악해 보면 다른 직무적성시험과 유사하게 5지 선다형으로 출제되며 상대평가를 하고 있다.
언어능력은 문법과 어휘, 한자, 한자성어 등이 출제되고, 수리능력은 자료의 이해와 해석, 정보추론, 응용계산 등이 포함된다. 추리능력은 논리학, 논리추리, 논리퍼즐, 논리분석 등을 공부해야 대비할 수 있다. 지각능력은 공간과 도형을 이해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
직무마인드는 기존에 종합교양과 같이 필수 과목에 포함됐던 국가정보학의 이론과 관련돼 있다고 보면 된다. 상황판단과 직무상식을 포함하고 있다. 상황판단은 국가정보, 국가정보기관, 정보활동, 정보수집활동, 방첩활동, 비밀공작활동 등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제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안보정책, 해외 정책정보, 국내 정책정보, 국가관, 인재상 등을 파악하기 위한 문제도 출제한다. 너무 거창한 내용이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국가정보학을 공부하면 충분하게 대비할 수 있다.
국가정보학의 이론서는 국가정보의 필요성, 국가정보기관의 역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정보기관의 임무, 혁신과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수험준비 시간이 충분하다면 외교사, 정책학, 정치학 등의 전문 서적을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5급 행정고시, 5급 입법고시 등에 출제된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유사한 문제가 출제되면서 이를 토대로 공부하는 수험생이 늘어나고 있다. 출제유형이 비슷해지면서 이들 시험을 준비하던 수험생들이 국정원 7급 공채에 도전하는 사례도 증가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둘째, 논술은 한국사에 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논리를 이끌어 가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통합논술 유형을 채택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내 논술시험 대부분이 주어진 제시문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서술하는 방식이 도입됐는데, 실제 글의 형식을 맞추는 요식적인 논술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국정원도 2014년부터 통합논술을 도입했는데, 한국사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양질의 글을 쓰기 어려운 주제를 선호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논술에 출제되는 전근대사, 현대사, 한국사상사, 인물사 등에 관련된 서적을 읽거나 자료를 취합해 정리하면서 공부한다.
자주 출제되는 주제를 보면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과 고려의 건국, 고려 말 귀족의 부패와 신진 대부의 등장, 조선의 건국과 정도전의 개혁, 조선 말 개화시기에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간신정변과 일본의 정치적 개입, 일본의 식민지정책과 독립운동, 해방 이후 남북 간의 대립과 주변 열강의 정치간섭, 남북대화와 통일노력, 한국의 안보과제 등이다.
그렇다면 국정원 논술 출제위원들이 왜 이러한 논제를 선택하는지 아는 것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좋은 글을 쓰는 첫 걸음에 해당된다. 영국 역사학자 E.H. 카(Edward Hallet Carr)는 ‘역사는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잘못된 전철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더욱 진보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인류 1만년 기록된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국가와 국민들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해 불행을 반복해 경험하고 있다.
정보생산자(producer)인 국가정보기관은 국가의 정책을 선도해서는 안되지만 최고 지도자가 정책을 입안, 선택, 집행, 평가 등에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정보소비자(consumer)가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판단해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의 가치(value)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한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 직원이 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보수나 진보, 식민사관 등과 차별화된 올바른 역사관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논술시험에서 지원자의 역사관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가 단편적인 지식을 테스트하는데 불과하기 때문에 논술이 지원자의 능력이 차별화되는 과목이라는 점도 감안한 것이다.
▶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도 꼭 필요한 과목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국가정보원 7급 공채 시험의 과목이 현재와 같이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 통합논술로 결정된 것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시험과목이 국사와 국민윤리, 종합교양과 논술 등으로 변했다가 다시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라는 생소한 과목이 포함됐다.
과거 국가정보기관 직원은 국가관과 윤리관이 투철해야 한다고 판단해 국사와 국민윤리를 시험과목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수험생이 자신의 생각과 공부한 지식을 정리한 짧은 논술을 바탕으로 국가관과 윤리관을 평가 혹은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통일신라 시대 말기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는 자신이 부처가 환생한 미륵불이라고 말하며, 사람의 마음을 읽는 소위‘관심법’을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국정원 논술 채점관이 수험생의 글을 읽고 숨겨진 마음을 파악할 수 있는 관심법에 능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논술은 참고 자료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채택된 시험과목인 종합교양, 국가정보학 등도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종합교양은 사회과학, 인문과학, 자연과학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수험생의 다양한 지식을 평가할 수 있지만 난해했다. 국가정보학도 최소한 국가정보기관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채용 후 업무수행과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었다.
종합교양의 경우에는 출제범위가 특정돼 있지 않아서 수험생의 입장에서 대비하기가 정말 어려운 과목이었다. 소위 말하는 ‘로또 당첨’과 마찬가지로 실력보다는 자신의 운에 맡겨야 한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많았는데, 결정적으로 과목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라 아닐까 추정된다.
그렇다고 새롭게 채택된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가 훌륭한 자질과 역량을 갖춘 예비 정보인 여부를 판단하는 좋은 과목인지도 의문이다. 시험에 출제되는 언어, 수리, 추리, 지각능력도 정보전문가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인지 수십 년 간 정보전문가로 살아온 필자도 판단하기 어렵다.
지난 몇 년 동안 출제된 국가정보적격성검사(NIAT)의 기출문제를 분석해 본 결과 문제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과 직접적인 직무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공직적격성평가(PSAT)나 대기업, 공기업 등의 직무적성평가는 업무수행에 필요한 능력을 평가하기 보다는 너무 많은 수험생이 지원하기 때문에 면접 인원을 줄여주는 시험과목의 하나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정작 우수한 인력은 서류전형과 면접만으로 선발하는 이유다.
아직 시행된 지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평가의 적합성이나 효과성을 논의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현재까지 한국의 인사담당자나 경영학자들이 직무적성평가를 대체할 수 있는 평가방법을 찾지 못한 것도 현행 과목을 유지할 수 밖에 없는데 한 몫하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의 직원을 공개적으로 채용한다고 해도 다른 공무원 시험과 마찬가지로 직무적성평가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원자가 아무리 많아도 다양한 방식으로 능력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계속 –
* 칼럼내용 문의 : 민진규 교수(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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