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미국 금융위기는 전세계적인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영원히 유지될 것 같은 세계유일강대국인 미국의 위상이 치명상을 입고, 세계 기축통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달러와에 대한 불안과 우려감은 달러가치의 하락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현재 미국 좁스홉킨스대 Carey Business School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신 정광수교수님의 칼럼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경제위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개과정을 잘 예측한 것으로 보인다.
원인이었든 결과이었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미국의 대공황은 금융부분의 실패와 직접 관련이 있었고, 공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일련의 조치가 은행업에 대한 규제와 법령 정비를 포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33년에 제정된 Glass-Steagall법은 은행 영업 영역을 전통적인 대부업을 전담하는 상업은행과 각종 유가증권을 발행하고 기업합병 등을 투자자문해주는 일을 전담하는 투자은행으로 나누어 서로의 영역을 넘지 못하도록 정하였고 FDIC를 설립하여 상업은행에 예치된 예금만을 정부가 일정한도까지 보장해주기로 하였다. 이때 J.P. Morgan 은행에서 투자자문 업무를 하던 부서가 떨어져 나와 만들어진 것이 Morgan Stanley 투자은행이다. 한편 이러한 분리정책 하에서 투자은행들은 특히 근래에 이르러 새로운 금융상품 및 금융기법의 발달과 기업합병의 성행에 힘입어 크게 발전하고 성장하였다. 반면 상업은행은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은행업무를 병행할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엿보게 되었고 마침내 1999년에 제정된 Gramm-Leach-Bliley 법은 은행지주회사가 다른 금융기관을 소유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그 길을 터주었다.
현 경제위기는 금융위기에서 비롯되었고 금융위기는 또 주택시장의 불황 혹은 붕괴에 따른 결과로 보이는데, 그 근원이유중의 하나가 소위 말하는 주택담보대출(mortgage, 모기지)의 “유동화 (securitization)” 이다. 모기지를 빌려주는 즉 투자자의 입장에서 볼 때 형식상으로는 매달 일정한 금액을 거두어 드리는 안정적인 투자인 듯 하지만, 빌린 사람이 월납부금을 체납하게 될 가능성 또 대출금을 일시에 갚아버릴 가능성 등 수반되는 위험을 계산하기가 매우 어렵기에 실상 매력적인 투자수단이 아니었다. 더우기 우량(Prime) 모기지와는 달리 신용상태가 상대적으로 불량한 사람들에게 대출된 Alt-A 나 Subprime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한 위험을 “정교한 방법”으로 예측하고 가격을 매겨서 모기지를 투자대상으로 유동화시켜 탄생한 금융상품이 소위 말하는 “부채담보부증권 (CDO)”이다. CDO는 쉽게 말해서 불량모기지를 우량모기지와 적절히 섞어서 “괜찮은” 모기지묶음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얇게 저민 닭고기를 튀겨서 썰지 않은 양상치위에그대로 놓으면 메뉴에 육식요리인 치킨까스로 등장하지만 잘게 썰어서 역시 잘게 썰은 양상치와 섞으면 메뉴에 본래 채식요리인 샐러드의 일종으로 등장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문제는 가능하면 많은 치킨을 샐러드에 얹어서 팔고 싶은데 얼마나 많은 야채와 섞어야 샐러드로 통과되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답은 샐러드 평가 담당자가 협조해주면 쉽게 얻을 수 있고 때로는 초과된 치킨을 눈감아 주도록 부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돌이켜볼 때 문제는 이러한 “괜찮은” 모기지묶음이 신용등급 평가기관들에 의해 우량(AAA등급)으로 평가되고 따라서 투자가들 눈에 안전한 투자수단으로 인식되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분량이 발행되고 거래되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때 “금융혁신(financial innovation)”으로 불리었던 CDO의 가격산정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그 분명한 이유 중의 하나는 “월가의 탐욕 (greed of Wall Street)” 이다. 금융시장이 왜 잘 작동하고 가격이 어떻게 주어진 상황과 정보를 효율적으로 반영하는가에 대한 교과서적인 대답중의 하나는 월가의 수많은 인재들이 각 금융거래의 양편으로 나뉘어 최선을 다해 이익추구를 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많은 사람의 경쟁원리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밝혀진 월가의 작동원리는 적어도 CDO에 관한 신용평가기관과 발행기관들이 서로 봐주며 탐욕을 만족시키는 도덕적 해이에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분명한 이유는 위험을 예측하는 “정교한 방법” 자체가 완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른 많은 예측 모형들처럼 기본 계수들이 과거의 관측치에 의거해서 산정되었는데,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부도나는 모기지들이 급증하게 되자 과거의 주택시장 활황과 낮은 부도율에 의존한 계수들은 무의미해 지고, 결과적으로 볼 때 CDO의 위험은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거래되었었음이 드러났다.
한편, 괜찮은 모기지묶음으로의 유동화의 인기와 급속한 진전은 계속 더 많은 모기지를 재료로 필요로 했고 따라서 모기지 대출 대상은 점점 더 체납이나 부도 위험이 큰 사람들로 확장되어 갔다. 실제로 전통적인 모기지 형태가 아닌 “이자만 내는 모기지(interest-only mortgage)” 등 신종 모기지들이 등장하여 CDO로 변환되곤 하였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전에는 가난하거나 이미 모기지로 집을 소유해서 더 이상 모기지를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이 집을 살 수 있게 됨음을 의미한다. 당연히 이는 주거의 목적이든 투자의 목적이든 주택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켜 주택시장의 거품형성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한없이 계속될 수 없는 것이고 이에 모기지를 체납하거나 부도를 내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결국 CDO 시장은 붕괴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러한CDO시장의 붕괴는 전체 금융시장에서CDO라는 특정금융상품만의 문제가 될 수 없다. CDO또 이와 유사한 또는 이에 의존한 파생상품에 투자한 사람들의 손실을 의미함은 물론 “위험을 계산하는 방법에 대한 신뢰”가 깨진 금융기관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거나 정지되었고 이는 “돈이 돌지 않는 금융경색(credit crunch)”를 의미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물론 세계각국의 유수한 금융기관과 투자펀드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았고 그 결과 더러는 도산하거나 흡수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한때는 어떤 투자기관이 얼마나 더 큰 손실을 보았는지가 뉴스거리가 되었으며, 금융경색 현상이 월스트리트 (Wall Street)에서 끝나고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 실물경제)로는 크게 퍼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메인스트리트의 위기가 도래했음을 체감하며, 실업율 도산율 등 각종 위기적 현상과 연방정부 및 중앙은행 등 각종 정부기관들의 대처방법 등에 지대한 관심과 두고 희망을 거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금융부문에서 시작된 문제가 어떻게 실물경제 아니 전체경제의 위기로 커진 것일까? 사실 금융부문의 유동성문제가 순식간에 실물경제위기로 퍼질 수 있음은 한국등 아시아 국가들이 경험한 1997년 경제위기에서 잘 알려진 바가 있다. 그당시 시작은 달러부족으로 인한 금융기관들의 유동성문제였지만 곧 수많은 기업도산과 실업자가 양산되는 경제위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던 것이다. 당시 세계경제 차원에서 보면 한국의 경제위기는 국지적이었고 따라서 원화의 평가절하에 힘입은 수출의 지속적인 확장이 신속한 경제회복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이점이 있었다. 이에 반해 현재의 미국경제는 위기의 발상지임은 물론 경제규모의 3분의 2 이상을 소비에 의존하는 교역구조상 주요 수입국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