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6-05-04 09:18:36, 수정 2016-05-04 09:18:36
'KTL 맞춤형 해외경제정보 프로젝트' 오보로
좌초…허위 제보 확인 않고 보도
'국가정보학' 펴낸 민진규 소장 "중단된 'KTL 맞춤형 해외경제
정보 프로젝트' 다시 추진돼야"
‘국가정보학: 역사와 혁신’ 개정증보판을 펴낸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은 “군사안보 못지않게 경제안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경제안보도 군사안보 못잖게 중요하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 정보전문가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이 대표 저서인 ‘국가정보학: 역사와 혁신’(배움) 개정판을 펴내며 머리말을 통해 최근 겪은 황당한 사건을 소개했다.
‘국가정보학’은 정보학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한 정보학 입문서이자 정보학 백과사전이다. 특히 이번 개정판은 각 나라별 정보기관의 역사와 나날이 생성되는 새로운 용어에 대한 설명을 포함했다.
국방부 정보부대 분석관(예비역 공군대위) 출신으로 호주 시드니대학교에서 MBA 학위를 받은 민 소장은 정보기관과 국내외 기업에서 정보학 관련 강의를 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과 이론을 버무려 살아있는 정보학 가이드북을 펴냈다.
민 소장은 이 외에도 ‘비즈니스 정보전략’, ‘전략적 메모의 기술’, ‘총성 없는 정보전쟁’, ‘내부고발과 윤리경영’ 등 관련 책을 여러 권 펴내 정보학 분야의 권위자가 됐다.
민 소장이 최근 2년여 동안 겪었다고 밝힌 ‘유쾌하지 못한 시간’은 충격적이다. 그가 2014년 3월부터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의 컨설팅 프로젝트’에 계약직 컨설턴트로 있으면서 당한 황당한 일을 말한다.
사건의 발단은 민 소장을 프로젝트 매니저로 고용한 모 경제신문사가 ‘프로젝트팀 직원 2명에게 최저임금 이하를 지급하고 인턴 기간이 지나자 바로 해고’한 데서 비롯됐다. 즉, 단순한 노동분쟁이 단초였다. 그런데 해고된 직원 2명이 민 소장이 이끌던 프로젝트팀을 “국정원 댓글부대로 의심된다”고 언론에 허위 제보한 것. 이걸 모 신문이 사실 확인도 않고 “국정원 댓글부대로 의심되는∼”이란 선정적인 수식어를 붙여 수십 차례 보도하면서 어이없는 사건으로 왜곡된 것이다. 국회감사에까지 불려 나갔다. 엉터리 제보와 오보로 사건이 변질됐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을 지원하려던 원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민 소장을 헐뜯는 허위기사만 나돌았다. 현재 해당 언론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기소 돼 재판 중이다.
KTL은 국내외 기업을 대상으로 품질인증 업무를 수행하는 공기업으로 해외 시장정보에 어두운 수출 중소기업에 수요 맞춤형 해외경제정보를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프로젝트에 컨설턴트로 참여한 민 소장은 267개 국가의 경제정보 수집·제공을 목표로 수립했고, 이를 위해서 80여 개 언어를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가정보원, 외교부, 산업통상부 등 정부기관들이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국가예산을 절약하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해 관련 내용을 컨설팅 보고서에 포함시켰다. 거기엔 해외에 지부나 네트워크가 있는 자유총연맹 등의 조직도 활용할 수 있다고 봤다. 선교사가 다수 파견된 종교 단체를 활용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었다.
국가정보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정보기관의 바람직한 역할을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신문이 엉터리 제보만 믿고, 한창 사회적 이슈였던 “댓글부대로 의심되는~”식으로 보도함으로써 컨설팅 보고서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이 적지 많았다. 이들이 궁금해 하는 부문과 해명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80개 언어의 원문을 수록하고 이를 번역해 분석한 보고서 작성에 국가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오해다. 해외에 광범위한 정보망을 갖춘 정보기관이 아니면 80개 언어를 번역할 수 없다며 정보기관과 연루된 프로젝트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는 컨설팅 업무에 투입된 인력의 노력과 민 소장이 이끈 프로젝트팀이 오랜 세월 구축해온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결과다. 구글 번역기를 돌렸을 뿐이라는 주장도 허위라는 것이 금세 확인됐다.
둘째, 컨설팅 보고서에 사용된 용어가 국가정보기관이 사용하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력은 국가정보기관 직원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보고서에 사용된 용어는 미국 CIA를 포함한 전 세계 정보기관이 사용하는 표준용어다. 이 역시 허위 주장으로 드러났다.
셋째, 보고서에 포함된 내용이 CIA의 ‘팩트북(fact book)’을 포함해 공개된 내용이라 가치가 없다고 폄하했다. 267개 국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보유한 기관은 CIA밖에 없고 CIA가 공개한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 CIA가 발간하는 국가 팩트북 자체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공개 정보에 대해서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세계적인 정보기관인 CIA도 업무의 상당 부분을 공개정보를 통해 수행하고 있다. 비밀리에 수집하는 정보는 10%도 채 안 된다. 다른 나라 정보기관도 공개정보를 통해 수집한 정보가 전체의 95% 이상 차지한다. 공개정보는 수집해 활용할 가치가 없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말장난이다.
넷째, 구글 검색기능을 활용해 수집한 정보는 가치가 없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구글 검색엔진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검색엔진과는 질과 양 등 전반적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
다섯째, 보고서에 열거된 정부기관, 공공기관 등이 조직적으로 연루됐다는 오해를 받았다. 컨설팅의 목적은 국가 차원에서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있는 모든 해결책을 포함시켰고, 국가기관 간 유기적인 연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KTL과 같은 공기업이 국가기관과 해외 경제정보를 공유하고 중소기업이 활용하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KTL은 어떤 국가기관도 생각하지 못했던 중소기업에 대한 해외 경제정보 지원 방법을 추진했다. KTL은 국가와 대기업이 방관하고 있던 임무를 창의적으로 시도한 것 자체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민 소장은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 중단된 이 프로젝트를 KTL이 아니더라도 다른 기관이 이른 시일 내에 다시 추진해 애초 의도한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2년 동안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 정부와 기업이 해외정보에 철저하게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다양한 국가기관과 대기업 부설 연구소가 해외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업무에 활용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정보의 질은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 소장은 또 “대부분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몇 개의 언어를 다루는 수준에 불과했고 해당 언어에 능숙한 직원을 충분히 확보한 조직을 찾기도 어려웠다”며 “21세기를 정보화시대라고 말하지만 정작 정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도, 기업도 많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민 소장은 “한국경제가 샌드위치 신세라서 걱정이고 국민소득이 2만달러 대에서 10년 이상 정체돼 있다고 한탄하면서 정작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해외 경제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려는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군사안보 못지않게 경제안보가 중요하며, 해외시장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면 어떤 기업도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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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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