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국가의 품격, 세계에서 국가의 위상 등에 관해 잘 모르거나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이면서 해군에서 오래 근무하였고,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로 계시는 차윤 교수님의 글이 1월 8일 월간조선 ‘전문가 칼럼’에 실려 소개해본다. 평소에 이 분이 기고하는 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다같이 읽어보고 대한민국의 국제위상과 21세기를 준비할 자세를 고민해 보자.
요즈음처럼 ‘글로벌’이란 말이 자주 쓰여지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너도 나도 ‘글로벌’이란다. 하기야 ‘폐쇄성’이 제일 큰 문제가 되었던 오랜 과거가 있었기에 ‘글로벌’ 이란 말이 유행처럼 쓰여지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할는지 모른다. 그런데 ‘글로벌’이란 말의 개념을 바르게 알고나 쓰는지 갸우뚱해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재벌그룹의 총수들이 새해를 맞이하면서 결의를 다지는 자리에서 “올해는 글로벌에서 성과를 내는 해…” 또는 “새해에는 글로벌 선두업체로 도약하는 해…”라던가 “올해는 움 추리기보다 글로벌 공격경영을…” 심지어는 “올해는 글로벌 영토 확장…”이란 표현까지 쓰고 있다. 뜻이 안 통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를 삼을 만큼 잘못된 용어사용법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런 말들을 마구 쓰고 있는지
궁금 할 뿐이다.
필자가 그 동안 글로나 말로 접해 본 ‘글로벌’ 또는 ‘글로벌리제이션’ 이란 표현의 대부분은 한결같이 ‘해외로 뻗어나가는 것’ ‘우리의 시장을 다양화 해나가는 것’ ‘한류를 이용하여 우리 것을 세계화 하려는 것’ 등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모두가 국력신장 하겠다는 뜻이고 자신이 있다는 표현이기에 우리로서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생각 있는 외국사람들과 접하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른바 ‘글로벌’과 그들이 감지하는 ‘글로벌’ 사이에 상당한 갭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애당초 ‘글로벌’이란 말의 시작은 여기서부터였다고 생각한다. 즉 대외의존도가 극심한 우리경제의 활로를 확보하고 국제사회에서 존경까지는 못 가더라도 인정을 받는 국격을 갖추려고 하면 우리의 생각, 생활방식, 가치관만을 고집해서는 따돌림을 당할 수 있을 것이기에 우리 것을 다소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사회(특히 선진국)가 인정하고 받아주는 기준 즉 ‘글로벌 스탠더드’ 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 우리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말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사용하는 ‘글로벌’이란 말이 국제사회에서 다른 뜻으로 오해를 받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글로벌 스탠더드’ 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가 투명성(Transparency)이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감추는 것 없이 투명해야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평성 (Fairness)이다. 받으면 줄줄 알아야 하고, 모든 일에는 반드시 대가지불이 있는 법이며, 공짜란 있을 수 없다는 말도 된다. 하다못해 대화에 있어서도 혼자 떠들어 대는 것은 환영 받지 못할 뿐더러 때로는 병신 취급 당할 수도 있다. 셋째는, 효율성(Efficiency)이다. 시간관념, 표현력, 불필요한 겸손 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로, 임감(accountability)이다. 최근에 와서 이 책임감 속에는 도덕성과 섬김의 리더십(Serving Leadership)을 포함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끝으로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를 말한다.
여기에는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수용능력뿐만이 아니라 적응력을 중시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의식 즉 국제적 예법이 크게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사람이 가장 취약한 분야 이기도 하다. 이렇게 놓고 볼 때, ‘글로벌’이란 말을 예사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이러한 뜻을 생각하면서 쓰고 있는지 의문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글로벌’이란 말이 우리를 과시하는 말이기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훈련을 쌓아가야 할 규범에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런 말을 할 때면 의례히 듣는 반응이 있다. “우리가 지금 꿀릴 것이 뭐 있어. 이만하면 잘 해나가고 있는데… 왜 자꾸 기 죽이는 소리, 찬물 껴 얹는 소리만 작작 하는 거야…” 한국이 OO도 세계제일, OO도 세계최고, 경제위기극복도 세계제일, G20정상회의유치, 원자로수출성공, 세계 최고층 건물성공 등을 나열하면서 마치 한국이 이미 ’글로벌 파워(Global Power)’ 라도 된 듯이 소리를 높인다.
여기에 대해서 나의 답은 항상 이렇다. “좋은 일이고 자랑스러운 일이고 축하할 일이지. 그러나 이러한 성공이 일시적인 성공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 아닌가. 그렇다면 더 멀리 봐야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좋지만, 멋지고 존경 받는 승리자가 되어야지… 뭐? 내가 기를 죽인다고? 국격을 높이자는 이야기인걸 몰라?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대접받아가며 발전하려면 경쟁에서 이기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움을 사거나 싫어지는 나라가 돼서는 안될 것 아닌가. 미움을 사거나 싫어지면 결국 고립되고 고립되면 망하는 것 몰라?”
“우리는 가끔 너무 순진해서 외국사람들이 ‘예의’로 칭찬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곤 하는데 분별력이 없어 탈이지. 진짜로 칭찬하는 거라면 가까이 올 것이지 칭찬해놓고 오히려 피해 가는 것 보고도 눈치채지 못 한단 말이야… 우리끼리는 그렇게 눈치가 빠르면서도, 어째 이런 눈치는 못 차릴까… 누가 그런 말을 하던데… ‘한국의 저질 정치가 앞으로 한국의 경제를 잡아먹게 될 거라고…’ 왠 줄 알아?
몰지각한 부모들이 자식들을 오냐 오냐 하고만 길러내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가르치지 않고 무조건 ‘기(氣)살리기’에만 신경을 쓴 결과, 자기만 알고, 죽도록 타협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의 세대를 탄생시켰지. 이들이 국회까지 나가서 하는 짓 이라곤… 잘 보고 느꼈겠지만 말이야. 국가도 마찬가지야… 기 안 죽이려고 칭찬만 냅다 하면서 내버려두면 결국 국제사회에서도 지금처럼 개망신만 하고 말 것일세. 그러기 전에 할말은 해야 하고 때로는 정신차리라고 찬물 또 껴 얹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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