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부문의 신용경색이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로는 기계적인 (mechanical) 것과 심리적인 (psychological) 것을 들 수 있다. 우선 기계적인 이유는 각종 경제활동이 금융기관의 “돈을 돌리는” 역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주택, 자동차 등 각종 내구재의 구입은 물론 일상 소비를 위해 지출하는 많은 부분이 신용거래이고, 기업의 투자자금조달은 물론 현금 및 유동자산관리 또한 많은 부분을 금융기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은 곧 심장이상에 의해 피가 돌지 않을 때처럼 몸 각 부분이 괴사하기 시작하는 전체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빨리 심장을 고쳐서 피가 돌기 시작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위기확장의 심리적인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심리적인 이유란 바로 신뢰(confidence)의 추락이다. 소비자가 행복 추구를 위해 소비를 하거나 기업이 이윤 추구를 위해 투자를 하거나 은행이 이들에게 대출을 할 때, 그들이 거래의 조건이나 결과에 대해 기본적으로 믿는 바탕이 있어야 정상적으로 활동이 이루어진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커서 지금 사야 하는지 지금 투자해야 하는지 혹은 지금 대출해 줘도 되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면 경제활동은 위축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통상 치과소비는 소득이 줄면 소비도 주는 정상재 (normal good)인데, 소득이 줄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너무 나빠서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직장을 잃고 따라서 보험도 잃기 전에 검진과 치료를 받기 위해 치과소비가 늘어났다는 것이 그 한 예가 된다. 실제로 한 분기에 국내총생산(GDP)이 6% 이상 줄고 한 달에 평균 60만개 이상의 직장이 줄고 있는 현실은 대공황 이후 미국이 경험하는 최대의 비정상적 경제상태임이 여실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 미국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뛰어난 투자실력 때문에 현인으로 불리우는 워런버핏(Warren Buffett) 에 의하면 지난 3월 9일 현재 미국 경제는 절벽에서 떨어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표현에 공감하였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은 중력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빠르게 추락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붙잡아 끌어올리기가 어려워짐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결국 공황(Depression)으로 치닫고 말 것인가? 저명한 경제학자인 배로우(Robert Barro)는 최근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 등 25개 국가의 금융위기와 공황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결과 일단 주식시장이 붕괴되면 공황으로 이어질 확률이 40%가 넘었다고 하였고, 지난 3월 11일 NBC방송이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약 50명의 경제전문가들의 의견을 조사한 결과는 현상황이 공황으로 갈 확률은 1/6 정도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미국경제가 공황으로 추락하지 않고 현재의 위기 또는 불황(recession) 상황을 탈피하여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일찌기 케이즈(John Maynard Keynes)는 실업자가 늘다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충분히 내려가서 고용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경제가 불황에서 회복될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미국에서 노동자들 임금과 실업률문제는 경제정책상으로도 중요하지만 여론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므로 이러한 방법으로 회복되길 기다릴 수는 없고, 회생능력이 희박한 자동차업계를 지원해 줌으로서 현 오바마정부도 “일자리 상실”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밖에도 케임즈는 적어도 두 가지 경제회복의 길을 제시했는데 이들은 앞서 말한 현 경제위기의 기계적 심리적 이유들과 각기 관련이 있다.
케인즈는 신뢰가 회복되어 소비심리 투자심리가 살아나면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는 투자가 이자율만의 함수가 아니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크게 좌우된다고 하였다. 가령 정부가 통화량을 늘여서 이자율을 바닥까지 내린다 해도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면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 경제상황에서 사람들이 갑자기 신뢰를 회복하여 경제활동의 물꼬가 트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명백한 방법이 보이지도 않는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의 1997년 경제위기 때는 위기극복을 위한 범국민적 의지가 있었고 이는 “금모으기운동”같은 결집된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결국 신뢰회복의 문제는 한국의 예처럼 소비자 기업 은행들이 같은 믿음이나 의지를 갖게 되는가 하는 것인데, 미국의 사회문화적 다양성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까지도 오바마 대통령 자신을 포함한 고위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대중과의 대화 시 상황이 얼마나 더 심각해질 수 있는지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서 심리적 위축을 우히려 부추겼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게다가 간간히 하지만 계속적으로 드러나는 월가의 탐욕적 불법행위나 구제자금을 받은 금융기관의 공공자본 유용행위 등은 경제적 신뢰의 회복을 방해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기계적 원인과 관련된 케인즈의 해법은 돈을 정부가 나서서 돌리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막대한 돈을 금융시장에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금융기관들이 돈을 쌓아놓고 돌리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금융기관이 그래야 하는 이유야 어쨌든 간에 케인즈 표현에 의하면 “유동성함정 (Liquidity Trap)”에 빠져서 통화정책이 무용지물이 된 상태인 것이다. 사실 은행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손해가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복잡한 구조의 부실부채를 껴안고 있는 입장에서 들어온 돈을 자본확충(recapitalization)에 쓰든지 해야지 만약 누구든지 부도낼 수 있는 상황에서 대출로 돈을 내보낸다는 것은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더우기 다른 은행들이 돈을 돌리지 않는한 자기 은행만 돈을 돌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많은 위험을 떠안게 되는 “죄수의 딜레마 (Prisoner’s Dilemma)” 같은 것이 현 상황이다.
정부가 직접 돈을 돌린다는 것은 금융기관이나 통화정책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소비 또는 공공투자 등을 통하여 돈을 노동자나 기업들에 쥐어주고 쓰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 의 효과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민간을 대신해서 정부가 평상시에 소비주도로 돌아가는 미국경제 방식을 그대로 되살린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케인즈의 해법이 루즈벨트대통령의 대공황극복을 위한 뉴딜(New Deal) 정책의 근간이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8000억불에 가까운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정책(Stimulus Package) 또한 이를 따르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나 지나친 재정적자로 인한 제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이같은 정부의 직접소비가 불황을 종식시키고 경제상태를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간단히 결국 그렇다는 것인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부터 경제가 회복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앞서 언급된 NBC방송 서베이에 의하면 경제전문가들은 평균적으로 올해 10월쯤 회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잠깐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추세로 돌아가곤 하는 베어마켓랠리(Bear Market Rally)를 반복하는 증권시장과 약간의 회복 기미를 보이는 신규건설 주택시장 등 복잡한 상황에서 경제회복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NBC방송 서베이의 같은 경제전문가들이 한달 전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는 회복시기가 올해 8월이라고 했던 것이다.
경제회복의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부정책에 대한 비관적 입장이나 위축된 경제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정부가 직접 나서서 돈을 돌리기 시작했기에 언제든 사람들의 경제적 신뢰가 회복되고 소비 투자욕구가 살아나면 실물경제가 자극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실물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금융기관들이 떠안고 있는 불량채무의 부담도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금융기관이 나서서 돈을 돌리기 시작하는 정상적인 행동이 시작되어 경제회복에 가속도가 붙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 이렇게 볼 때, 오바마대통령이 최근에 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필두로 경제회복에 관해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은 구체적 정책내용이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진작시키려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