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전략연구소 (2136)
국가정보학 (428)
글로벌정보경영전략 (57)
윤리경영 (308)
기업문화 (373)
위대한직장찾기 (460)
탐정학 (22)
전략적 메모의 기술 (4)
저자의견 및 칼럼소개 (239)
책과 세미나 소개 (223)
드론산업(4차산업혁명) (19)
ColorSwitch 00 01 02
▣  테러 - 해당되는 글 5건

민진규 국가정보학, '국가정보학-역사와 혁신' 국가 정보기관·군무원 시험대비 필독서 안착(2)


 

입력시간 : 2015-10-21 (수) 11:36

 

기자명 : 강서인 






 저자인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은 국가정보학을 집필하면서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한국인의 관점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관점에서 역사, 문화, 정체성을 보려고 노력해왔다.


'국가정보학-역사와 혁신' '민진규 국가정보학'에는 급변하는 21세기 국제질서에 한국이 잘 대응할 수 있도록 즉 경제정보활동, 사이버범죄, 국제범죄, 테러, 정보전쟁, 국가위기관리 등 각종 현안이 상세히 소개됐다.
 
이러한 이슈들은 그동안 국가정보기관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임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푸대접을 받았다. 학자들 역시 자료가 부족하거나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아 국가 안보를 위한 심도 있는 체계 정리가 부족한 상황.
 
민진규 소장은 군 정보기관에서 정보분석관으로 근무했으며, 군 제대 이후 약 20년간 국가정보기관에 관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의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등 정보기관의 역사, 정보활동의 특징, 미래전망과 현안 이슈 등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국내외 자료를 활용했다. 민 소장은 특히 국가정보기관의 비밀 적인 속성으로 인해 국내 자료가 일천한 제약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해외자료를 입수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방대한 자료를 연구하기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아랍어, 힌두어, 히브리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등 다양한 외국어에 대한 체계를 연구했고,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수의 외국어를 해독할 수 있게 됐다. 언어학자들이 언어에 대한 체계를 연구해 수십 개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 책이 대부분 번역된 자료나 일부 한정된 소수의 언어로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이 집필한 책들과 차별화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유로 보인다.
 
한편 민진규 소장은 "해외에 나간다고 해서 외국 정보기관이 관련 자료를 흔쾌히 제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각국 정부의 보도자료, 공개자료, 언론보도, 전문학술잡지 등을 검색해 확보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며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지만 가치 있는 정보를 판별할 수 있는 직관력과 다양한 언어로 된 자료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능력이 없다면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2000년대 들어 각국 정부가 정보공개제도를 활용해 많은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것도 공개정보의 질을 높이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세계 최고 정보기관이라고 일컫는 미국 CIA도 공개자료를 통해 많은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 정확한 비율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공개정보활동으로 수집한 정보가 비밀활동으로 수집한 정보보다 더 많다는 것은 확실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선진국 정보기관은 외부 민간전문가에게 공개정보를 수집하는 업무를 아웃소싱하고 있으며, 국내 정보기관도 이러한 추세를 따를 것으로 판단된다. 국가정보기관이 공개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경우 대상국과 외교마찰이 발생할 수 있고, 순환보직을 하는 공무원 체계상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하기 어렵기 때문.


- 계속 - 



[출처:코리아뉴스타임] 



국가정보학을 공부하는 수험생들로부터 오는 질문 중 다른 수험생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공부를 하다가 궁금한 사항이 있는 수험생은 주저 말고 이메일(stmin@hotmail.com)으로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내용:

1. 전략정보의 군사력정보와 전술정보의 군사능력정보를 구분하지 못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전반적인 전력, 단위부대, 무기체계와 장비의 첨담화 정도가 전술정보로 들어간다고 책에 소개되어 있지만 전략정보의 군사력정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 싶은데요. 왜냐하면 군의 첨담화 정도도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스케일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ICBM 스텔스 같은 첨단화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를 함부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국제사회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위치 등 장기적인 관점으로 여러 가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전략정보의 군사력 정보와 전술정보의 군사능력정보를 가르는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명확한 구분 기준을 알고 싶습니다.

 à 전술정보가 전략정보의 하위개념이라 모호한 측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전략정보의 군사력정보는 포괄적으로 보고, 전술정보의 군사능력정보는 지엽적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군사능력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무기와 군인 등에 관한 정보이고, 군사력정보는 잠재적인 부문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조금 애매한 부문이 있지만 이 정도만 이해하면 될 듯 합니다.

 

2. 2010 국가정보학 37 6번 문제인데요..

     우선 2번 선택지에 요소별 분류가 셔먼켄트가 했다고 가정하지 않으면 문제가 안 풀리는데요... 그런데 이론에서 요소별 분류는 제퍼리 T 리첼슨 밖에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요소별 분류는 제퍼리 T 치첼슨도 했지만 셔먼켄트도 별도로 했다라고 이해해도 되는지요? 3번 선택지에 사용자 수준에 따른 정보분류가 있는데요... 이 분류를 셔먼켄트가 했다라고 가정하지 않으면 이것도 정답이 안 나와서 입니다. 이론에는 사용자 수준에 따른 정보분류(국가정보/국가부문정보)만 나와 있었지.. 옆에 괄호치고 셔먼켄트가 했다라는 말은 안 나오거든요... 선생님... 그럼 사용자 수준에 따른 분류도 셔먼켄트가 했다라고 생각하면 맞는지요?? 그리고 해설지 보면 생뚱맞게 정책정보와 안보정보는 사용자 목적에 따른 분류이고 정보수집활동에 따라 인간정보와 기술정보로 나눌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 이 해설은 문제와 전혀 무관한 내용인데.. 왜 나왔지 하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오타라고 그냥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혹시 여기에 이 두 분류도 셔먼켄트가 했다라고 말하려고  넣으신건 아닌지 해서 질문드려 봅니다. 이론에서는 이 두 분류는 누가 했다라는 말이 안 나와 있거든요...

    à 질문은 정보의 정의에 대한 포괄적인 질문입니다. 셔먼 켄트만의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2번의 요소별 분류는 리첼슨이 분류한 것이 맞으며, 누가 했는지 특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만 틀리지 않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를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3. 선생님 2011 책으로 에듀스파에 문제풀이 한다고 하셨는데... 빨리 듣고 싶습니다^^

 à 2011 3월 14부터 문제풀이 동영상 강의가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문제풀이 강의와국정원 합격전략 및 논술강의는 고시스파(www.gosispa.com)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위의 내용은 2012년 개정판에 반영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내용출처:국가정보전략연구소]



남북관계가 천안함 사건 등으로 경색되고 있으며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한반도 상황이 어떻게 흐를지 모르는 상황에서 주변국의 대한반도정책은 복잡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2010년은 625발발 60주년, 419혁명 50주년 등으로 다양한 이해단체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모두 과거에 얽매여 있고, 막상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대안제시를 하지는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 글은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가 2010년 6월4 자유민주연구학회가 주최한 6.25 6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발제문으로 발표한 것을 소개한다. 625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6.25 60주년기념 특집>

 

공산권 자료로 본 6·25 전쟁 재평가(1): 러시아 측이 공개한 비밀문서를 중심으로*

 

1. 문제의 제기

지난 3 26일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의 천안함 폭침 원인을 조사해 온 민군합동 조사단은 5 20일 조사결과 발표에서 침몰 해역에서 수거한 어뢰의 프로펠러와 추진축 등 부품이 북한산 CHT-02D 어뢰의 설계도면과 일치함을 밝혔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 측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스모킹 건: smoking gun)’들이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은 ‘날조극’이며 남북한 관계를 파탄시키려는 모략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물증을 확인하기 위한 검열단을 남한 현지에 파견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북한이 60년 전 대남 평화공세를 취하다가 6 25일 새벽에 38도 분계선을 뚫고 남침을 하고서도 지금까지 북침을 하였다고 선전을 하고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등 그간 자행해온 각종 도발과 테러를 부인해 온 것보다 더 질이 나쁘고 뻔뻔하다. 마치 살인을 부인하던 범인이 현장 검증까지 스스로 하겠다는 식으로 막가는 태도이다.

1950 6 25 새벽 38선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한 북한군이 서울 시내에 입성하기까지 단 3일이 걸렸다. 북한군은 당일 옹진반도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26일 의정부, 27일 창동, 28일 새벽 미아리 방어선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그동안 개성·김포· 문산· 포천·의정부·춘천·가평 등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력에서 남북한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북한의 지상군 병력은 국군의 2배였다. 10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 3개 독립연대 등 182000명이었다. 국군은 8개 보병사단과 2개 독립연대 등 94000명이었다. 북한 전투장비는 남한의 3배가 넘었다. 개전 당시 북한은 200대가 넘는 전차를 보유했다. 국군은 단 한대도 없었다. 장병들은 북한 전차 소리만 들어도 도망을 가거나 두려움에 떨었다. 공군력의 경우 북한은 전투기 포함 211대가 있었지만, 아군은 연락기와 연습기 22대가 전부였다.

북한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해 한 달여 만에 부산을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북한 주공(主攻) 4개 사단과 1개 전차여단으로 구성된 제1군단이 맡았다. 3·4사단과 제105전차여단 예하 2개 전차연대는 의정부-서울 방향으로, 1사단과 1개 전차연대는 문산-서울 방향으로 공격했다. 나머지 6사단은 한강을 넘어 김포-영등포로 진격하게 했다.

조공(助攻) 3개 보병사단과 1개 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된 제2군단이 맡았다. 이 중 제2, 12사단과 모터사이클연대는 춘천-가평·홍천-수원 방향으로 진격해 서울 동측을 우회 공격, 국군 주력을 포위하도록 했다. 나머지 제5사단은 제766유격연대와 제945육전대의 지원을 받아 동해안 축선을 따라 포항 방면으로 남진하도록 했다.

국군의 전방방어 부대는 4개 사단과 1개 연대였다. 옹진반도에 보병 제17독립연대, 개성·문산에 제1사단, 의정부 북방에 제7사단, 춘천 북방에 제6사단, 동해안에 제8사단을 배치했다. 그나마 북한 남침 전날인 24 0 기해 한동안 계속했던 비상경계령이 해제됨에 따라 많은 장병이 휴가와 외박을 나가 부대에 남아 있는 병력은 절반에 불과했다. (1)

위와 같은 전쟁 초기의 전황과 이를 맞이한 한국 측의 대응, 특히 많은 장병의 휴가와 외박에 비추어 6·25 전쟁이 어느 측의 공격에서 시작되었음이 자명한데도 한국 국내에서는 북한의 북침 주장이 위험할 정도로 퍼져 있다.

이와 같은 북침 주장과 관련하여 지난 10년간 좌파정부 집권동안 주적 개념에 대하여도 김충배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 “2004 1월 육사 가()입교생 의식조사”를 한 결과 당시 250여명의 가입교생 중 무려 34%가 주적(主敵)이 ‘미국’이라고 답했고, ‘북한’이라고 답한 입교생이 33%에 머물 정도였다고 증언한 것처럼 크게 오도된 바 있다.

이렇게 학생들의 주적 개념이 오도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2008년 6월 23 행정안전부가 “리서치&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중·고생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보·안전의식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국가’를 묻는 질문에 미국(28.4%)이 가장 높았으며, 다음이 일본(27.7%)이고, 북한은 24.5% 3위에 그쳐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은 전쟁에서 죽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행방불명이 된 남북한 군인, 유엔군과 중공군의 군인이 300만 명에 달하고 또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행방불명이 된  야만적인 6·25 남침 전쟁을 일으키고도 북침 주장을 계속하고 있고 한국 내부에도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북침 주장은 김일성박헌영이 전쟁을 구상하고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던 위장전술임이 북한 자료 분석을 통하여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2)

특히 1992년부터 러시아가 더 이상의 논쟁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결정적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쟁 전후 스탈린(Joseph Vissariovich Stalin)-김일성-마오쩌둥(毛澤東) 간에 오고 간 비밀전문들을 공개함으로써 1970년대 이후 수정주의론자들이 주장해온 북침설이나 남침유도설은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려워졌고(3) 남침, 북침에 대한 논쟁도 사실상 끝난 것처럼 보인다.

다만 남아 있는 문제는 흐루시쵸프((Nikita Khrushchev)의 회고록(4), 6·25 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 부총참모장과 소련 주재 북한 대사를 역임한 이상조의 1989년 9월 11 기자회견 등에서 강조된 “한국전쟁이 김일성의 전쟁”인가를 검증하는 일이다.

과연 한국전쟁이 김일성의 개전의지와 역사적 결단에 의하여 일어났는가를 1992년부터 러시아 측에 의하여 공개된 세 가지 종류의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들(5)로 검증해보고 휴전 57년이 되어도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얻을 교훈과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계속)

<필자 주>

* 발표문은 『국제정치논총』 제39 2(1999)에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의 전략적 목표에 관한 연구” 제하로 개재된 연구자의 논문 중 누구에 의하여 남침 전쟁이 발발되었는가를 6. 25 전쟁 6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하고 그 후 발굴된 자료들로 업데이트한 것이다.

1) 최용호, “미니전사, ① 전쟁발발,” 『조선일보』, 2010. 3. 8, p. A5.

2)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II(서울: 나남, 2008), p. 871.

3) 김학준, 『한국전쟁-원인·과정·휴전·영향』(서울: 박영사, 2003), 3 개정·증보판, p. 414.

4) Khrushchev Remembers, with an Introduction, Commentary and Notes by Edward Crankshaw, translated and edited by Strobe Talbott (Boston: Little, Brown and Co., 1970).

5) On the Korean War, 1950-53, and the Armistice Negotiations 제하 첫 번째 자료는 미국과 전쟁 중인 베트콩에 대한 소련의 지원문제를 중국, 월맹 측 관계관들과 협의하려는 소련 관계관들에게 배경정보로 제공 할 목적으로 1966년 소련 외무성이 한국전쟁에의 소련과 중국의 개입 관련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Kathryn Weathersby, New Findings on the Korean War : Translation and Commentary,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Bulletin Issue 3 (Fall 1993),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 Washington, D. C. pp. 1,14-18. 두 번째 자료는 옐친(Boris Yeltsin) 대통령이 1994 6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공키 위하여 정리한 『한국전쟁 관련 러시아 외교문서』(이하 『한국전 문서요약』로 약칭)로서 1949-53년 기간 중 한국전쟁에 관한 216, 548쪽에 이른다. 세 번째 자료의 정식 명칭은 The Archive of the President, Russian Federation 이며 호칭은 APRF로서 1950. 2- 1953. 7 기간 중의 총 1, 200쪽에 이르는 러시아 대통령실 문서고 소장 문서들이다. 상기 문서들은 1993년 가을부터 Washington, D. C. 소재 Woodrow Wilson International Center for Scholars가 발간하는 Cold War International History Project (이하 CWIHP로 약칭) Bulletin에 시리즈로 게재 되었으며 http://www.wilsoncenter.org/cwihp  The Korean War 섹션에서 검색할 수 있다.



모든 국가가 국가의 안보를 보장받기 위하여 국가정보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통합형이나 분리형이냐라는 형태는 다르지만, 국가 정보기관이 하는 업무는 국가안보를 확립하기 위한 정보수집, 국가질서에 위해를 가하는 내외국인을 감시 및 체포하는 방첩활동, 마지막으로 국가정보기관의 대외적인 공작활동이다. 세계 대전과 냉전시대 등을 거치면서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저마다의 명성을 쌓아 왔다. 

미국의 CIA, 소련의 KGB,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은 해외첩보기관으로 대단한 명성을 쌓아 왔다. 이들기관은 해외정보 수집을 담당하였지만, 국내 방첩활동을 담당하는 기관은 별도로 되어 있다. 미국의 FBI와 영국의 MI5가 대표적인 방첩기관인데, 영국의 MI5에 알카에다 관련 조직들이 스파이를 심기위해 공작활동을 하였다고 BBC방송이 보도하였다. 

방송 보도에 따르면 알카에다 동조자들이 영국 정보기관의 직원 확충 기회를 틈타 영국 정보기관인 MI5 침투를 시도하였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영국 내무부에 따르면 MI5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엄격한 보안 심사 등을 거쳐 채용되며, 많은 지원자들이 탈락한다고 한다. 특히 MI5는 지난해 런던 지하철 테러이후, 직원을 공개적으로 모집하고 있으며, 아랍어, 벵갈어, 소말리어, 쿠르드 방언 등 각종 언어를 구사하는 직원 채용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이슬람 무장세력이나 테러 단체의 공작활동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에 소련의 스파이 활동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현재는 국제 범죄나 테러, 산업스파이 활동 등을 차단하기 위하여 기존의 전통적인 정보기관원과는 다른 별도의 채용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였는데, 상대방을 아는 노력의 일환으로 언어와 문화를 구사하는 직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이제는 국제 범죄나 테러의 예외국이 더이상 아니다. 따라서 한국의 방첩 및 정보기관도 외국 문화나 언어에 능통한 열혈 애국자들을 채용하여 업무에 활용하여야 한다. 과거의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한다면 급변하는 국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외국생활과 외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도 국가안보의식 등을 체크하는 신원조사는 더욱 철저하게 해야한다. 잘못하면 적의 스파이를 조직의 심장부에 들이는 꼴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피아 식별이 무척힘들다.  철저한 검증을 통한 인재 확보만이 국가안보를 지켜주는 것이다.



국제 터러행위가 세계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제 어느나라도 테러의 위협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한국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이런 와중에 평화롭고 안전하다고 자부하던 캐나다에서 테러 용의자를 체포하였다고 발표하여 놀라움을 주고 있다. 세계 테러분자들이 미국과 영국만을 목표로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 경찰은 지난 2일 밤부터 3일 새벽까지 수백명의 경찰을 동원, 토론토 지역에서 19 ~ 43세의 테러 용의자 17명을 전격 체포하였다고 한다. 이중 10대는 학생을 포함하여 5명이라고 한다. 체포된 용의자 대부분은 캐나다 영주권을 가진 아랍계.동남아시아계 젊은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세계적인 조직을 가진 알카에다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사상적으로 영행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빈 라덴은 2002년 11월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알카에다의 최고 지도자인 오사마 빈라덴은 2002년 11월 녹음 테이프를 통해 캐나다가 미국과 손잡고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으므로 캐나다를 미국.영국.호주.스페인과 함께 공격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캐나다 경찰은 용의자들의 검거과정에서 영국의 정보기관인 MI5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로부터 각종 폭발물, 무기, 군사작전 비디오 테이프, 공격 목표 리스트 등을 압수하였다고 한다.  경찰은 2004년부터 이들을 감시해오다가 폭탄제조용 질산 암모늄을 구입하자 테러가 임박하였다고 판단하여 체포하였다고 한다.

사건의 개요를 설명을 들으면, 캐나다 경찰이 대단한 일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들로 부터 압수한 폭발물 양은 1995년 극렬분자에 의한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테러에 사용된 것보다 3배나 많다고 한다. 그리고 캐나다 정부는 사전에 백악관에 사건을 설명하였다고 한다. 물론 용의자의 부모들과 변호사들은 대부분 착한 시민이고, 다만 이슬람 사원을 다녀서 혐의를 씌고 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수사결과와 재판이 진행되지 않아서 진실을 제대로 알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몇가지 짚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국제테러에서 국가간의 긴밀한 협조는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영국의 방첩기관의 도움을 받고, 미국 백악관에 사전에 설명을 하는 등 국제 테러에 대하여 우방국들의 협력을 받고 있다. 당연히 영국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망과 테러 진압경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지원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둘째 용의자들이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사소한 일로 혐의를 받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 영국 등 대테러 전선 국가들은 이슬람교도에 대하여 인권을 무시하고 조사를 진행하여 국제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세째 정말 테러 의도가 있었고 실행 능력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들중 몇명은 10대라고 하는데, 정말 테러 실행능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네째 우리나라는 우방국들과 긴밀한 협조체제속에서 국제 테러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요청으로 영국과 미국의 방첩요원들이 파견되어 테러 분자를 색출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국제 테러와의 전쟁에 신중을 기하여여야 한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나 민족, 종교인을 범죄가망자로 전부 분류하여서는 안된다. 이는 또다른 불행을 발생시키는 단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기업의 글로벌화와 여행 자유화로 해외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한국인도 국제 테러리스트의 테러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국가의 대응과 전략이 중요하다. 최근 이러한 사건들이 빈발하고 있으며 잘못된 대응으로 아까운 국민의 목숨을 잃게 된 사례도 많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articles
recent replies
recent trackbacks
notice
Admin : New post
BLOG main image
[아웃소싱 및 글로벌정보경영전략(GIMS) 컨설팅 포함.]

  rss skin by  m22m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