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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세미나 소개 - 해당되는 글 224건

 

 

 

| 추천사

 

“황금()에 눈 먼 일부 국새제작단 단원의 배신과 언론의 마녀사냥,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경찰과 검찰, 재판부의 짜맞추기식 엉터리 수사와 판결로 졸지에 생매장당한 세불 민홍규 선생이 옥중에서 쓴 경남 산청 국새전각전과 등황전, 그리고 기바위로 알려진 석경귀감석복석정 건립 비사다.

동양철학과 풍수에 능한 그의 천부적인 통찰력과 직감력, 나라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가 마무리하지 못한 등황전과 복석정에 대한 미련과 애착은 지금이라도 책임 있는 누군가 나서 완성할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 더 이상 나라와 국민의 큰 불행이 멎길 바라는 그의 충정이 책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길 기대한다.조정진<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저자

 

 
차 례

 

 

 

프롤로그 이 터를 조성하면서4

터를 만나다 등황을 기다리며12

 

 

1장 터를 열다

 

마음의 터를 잡으며27

단전지기를 찾아서30

천장지비는 있는가34

세 개의 혈처를 찾아서43

첫 번째 혈처는 명혈이다46

두 번째 통파혈을 찾다50

세 번째 탄파혈을 만나다55

 

2장 삼석인을 구하다

 

바위가 인으로 살아나다69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73

석경을 구하다78

거북바위를 찾아서86

바위 무더기에서 솥바위를 찾다105

  

3장 전각전은 상생의 장이다

 

땅도 운명을 타고 난다123

전각전의 터를 잡다128

전각전은 독특하다131

전통가마를 재현하다140

전각전 굴뚝에 피어나는 연기147

4대 국새를 만들다151

 

4장 등황전은 독특하다

 

등황전이라 부르다161

등황전은 비보 건물이다166

등황전에 잠자리가 날다170

주춧돌에 팔화초석을 새기다172

창방에 기운을 싣다178

대들보에 길상의문을 새기다181

상량문은 입체 조각이다185

등황전에 현어가 있다190

마고 도깨비상을 새기다193

추녀 단면에 인각하다196

토수와 태양새 삼족오 치미199

등황전 현판은 얼굴이다203

기와는 건물의 이름이다205

 

5장 석경에 우주를 담다

 

바위에 거울을 달다209

석경에 운도를 그리다215

석경에 오르는 길229

문양과 그림의 의미235

  

6장 귀감석을 세우다

 

꿈에 할머니를 만나다245

귀감석을 세우다251

귀감석에 기가 흐르다257

거북 등에 문자를 새기다261

문자는 자연의 순리다267

 

7장 터는 미완성이다

 

복석정에 기를 모아277

아수라장이 기를 없애니282

바람을 재우는 비탑을 세워야285

터가 말하다287

 

에필로그 기 체험장이 되어294

지은이_ 민홍규

[책소개보기]​


- 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 이야기

 

 

 

 

 

“숭례문 화재…잇단 대형 참사와 무관할까”

조선 건국의 초석을 다진 정도전은 1398년 한양도성의 남문으로 숭례문을 건립했다. 숭례문에는 불의 조화를 뜻하는 대풍수의 비기(秘記)가 숨어 있다. 숭례문이 불타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괘에 따라 화기를 제압하기 위해 세로 현판을 달았다.

1592년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보름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임금은 피란 가고 국토와 백성은 참혹하게 유린됐다. 1910년에는 숭례문 현판이 떨어졌다. 그 해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합병되며 나라가 망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과 전쟁을 겪었다.

20082월 숭례문이 방화로 불에 탔다. 201011월에는 국민화합과 국운융성, 통일의 비원(悲願)이 담긴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 처분됐다. 그 후 천안함 침몰(2010.3.26), 태안 고교생 해병대 캠프 사고(2013.7.18), 경주 리조트 강당 붕괴(2014.2.17), 세월호 침몰(2014.4.16) 등 대형 참사가 잇따르고 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대거 희생됐다. 숭례문 화재와 국새 폐기는 경남 산청 국새전각전과 과연 무슨 연관이 있을까

  

경남 산청의 ()체험장은 누가 왜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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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에도 눈이 있다. 국새전각전에서 만든 대한민국 4대 국새가 폐기되고 혈처를 다스리는 거울바위 석경(石鏡), 거북바위 귀감석(龜鑑石), 솥바위 복석정(福石鼎) 중 세 번째 바위가 잘못 놓여진 이후부터 터의 울음이 계속 되고 있는 듯하다.

터의 울음이 예사롭지 않다. 3년을 교도소에서 영어의 몸으로 지내면서 4대 국새를 만든 세불 민홍규는 많이 생각했다. 언젠가 이 터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때가 온 것이라 마음먹었다. 더 이상 이 터가 누군가의 사욕으로 훼손되고 이용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과 터 스스로 앓고 있는 몸살을 모른 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범부로서 이 터를 만나고, 터가 가진 기운을 일깨워 하나하나 모양새를 찾아가던 여정이다.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으려 했던 비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말하는 것도 이 터가 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008년 숭례문 화재 이후 끊이지 않는 화를 다스리는 데는 바위가 최상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바위로 땅의 혈처를 다스리는 것이다.

한반도를 거대한 몸으로 가정하면, 온기의 불기운이 가장 큰 혈처는 백두대간 단전자리이다. 전국 산천을 떠돌다 찾은 적임지는 경남 산청군 금속면 특골이다. 오행으로 토생금(土生金)을 부르는 터로 이 땅의 고단함을 처방하는 대길지(大吉地).

먼저 이곳의 땅 기운이 금() 기운의 국새를 만들도록 했다. 이곳에 국새전각전을 지어 대한민국 4대 국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기()가 가장 많이 뿜어져 나오는 혈처(穴處) 세 곳을 잡았다.

국새 제작뿐 아니라 세 개의 바위가 침을 놓듯이 혈 자리에 바로 자리 잡게 될 때는 국운도 만개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터라고 생각했다.

맥이 막히면 사관(四關)을 따내 듯 터의 혈에 세 개의 바위를 놓으면 이 땅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숭례문이 불탄 지 한 달 후인 20083월 첫걸음을 내디뎠다.

 

첫 번째 바위는 석경(石鏡)이다. 옛날에 쓰던 동거울(銅鏡)이 떠올랐다. 하늘을 압축하는 이것은 우리 마음과 세상을 비추는 도구였다. 이것을 통해 세 개 바위의 시작점에는 바위가 거울이 되어 적연좌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거울바위인 셈이다.

 

두 번째 바위 귀감석(龜鑑石)은 거북을 옥새에 사용한다는 역사를 참고하였다. 조선시대에 수 없이 많이 쓰이던 거북이옥새처럼 거북 바위를 놓고자 했다. 간절함 때문인지 앞으로 구해낼 거북바위의 형태, 크기, 모양까지도 떠올랐다. 생각한 것을 작업 노트에 그대로 그려 놓았다.

 

세 번째 바위는 힘들고 고단한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위해 다 퍼먹어도 남을 정도의 커다란 복석정(福石鼎)이다. 복을 나누어 주어도 모자람이 없는 솥바위다.

석경, 귀감석, 복석정이 나란히 앞산을 향해 놓일 자리가 정해져 있다. 석경을 따라가면 귀감석과 닿아 있고, 멀리 시야를 넓혀 앞으로 가면 복석정이 놓여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앞산과 갈지()자 형의 선상에 놓인다. 혈처에 올리는 바위는 음택을 없애고 양택, 양기 자리로 상관관계가 크다.

 

세 개의 바위는 각각 성격이 있다. 석경은 하늘의 뜻을 담아내는 강기석(降氣石), 귀감석은 땅의 지력을 돋우는 응기석(應氣石), 복석정은 사람을 위해 풀어내는 정기석(精氣石)이다.

 

복석정은 터 안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과 같다. 기운의 위력이 커서 그러하다. 반드시 기운을 움직이는 터가 되도록 기혈의 움직임을 보위하는 건물을 세워야 한다. 이 터에서는 바위가 주인이기에 그렇다.

 

국새 제작 터로 잡힌 이곳은 우리나라 금석학(전각예술)의 운용지로 손색이 없다. 이 터는 주산 좌우로 두 개의 산이 있다. 주산은 왕을 뜻하는 왕산(王山)이다. 우측은 필봉산(筆峰山), 좌측은 망경산(望京山)이다. 왕이 문무백관을 좌우로 거느린 형국으로 명당 중의 명당이다. 이 터의 세 혈처와 국새전각전, 등황전 등 비보(裨補) 건물은 서로 상응하도록 지어졌다. 국새 제작 외에 분정항례(分庭伉禮) 등 이 터 안에서 벌어질 여러 일들을 예상하여 정하였다. 전각전은 기 운행의 최종 건물이라 매우 중요하다.

 

마침내 국새를 제작할 터가 잡히고 국새전각전도 건립할 수 있게 되었다. 국운 융성을 기원하는 국새를 제작할 세 혈처도 찾아냈으니 틀은 잡힌 것이다. 이 터가 정말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영원한 쉼터가 될 수 있었으면 했다.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남쪽 끝에는 천년 고찰인 구례 화엄사가 있다. 이곳은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각황전(覺皇殿)이 있다. 이곳과 반대편 동북쪽 끝이 바로 이 터이다. 이 자리는 화엄사 각황전과 서로 힘을 대등하게 조율하는 큰오름(등황)’의 운장이 있다. 서로 좋게 한다는 힘이다. 그래서 등자(鐙子·말등자), 평성을 잡아주는 건물의 이름이 등황전(騰皇殿)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리산 전체 힘을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잡아놓는 이치가 있다. ‘등황이 필요한 터라서 이 이름으로 나타난다.

 

이 터는 트라이앵글의 힘이 강하다. 각각 세 혈처를 동시에 울리게 하지 않아도 서로 맥이 공존하고 있어서다. 때로는 공명과 파장, 진동이 성격은 다르지만 혈류 같은 맥이 울리고 있다. 또 터가 강한 곳은 대개가 바람이 드세다. 일도 많고 부딪힘도 다수 있다고 한다. 이 터에서는 세 개의 바위가 제 혈처에 놓이고 기운을 잡는 비보 건물과 여타 시설물이 제자리가 잡혀야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터는 아직 미완성이다.

 

복석정은 석경이나 귀감석보다 혈처가 강한 곳에 놓인다. 비보 건물까지 완공하고 나면 화룡점정으로 놓으려고 일부러 허좌(虛座)에 임시로 놓았다. 제 혈처에 놓지 않고 함부로 옮기면 기맥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홍규가 모함을 받고 영어의 몸이 되자 산청군은 산청세계한의약엑스포 개최를 이유로 복석정을 엉뚱한 곳에 안치했다. 등황전은 오색 칠을 해 마치 사찰 같이 만들어 놨다

 

민홍규가 국새를 산청, 굳이 이 터에서 완성하려 했던 이유는 4대 국새에 담은 의미를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땅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4대 국새는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의 뜻을 담았다. 그래서 그 이름이 태평새였다. 그 뜻을 실현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큰 기운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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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_ 민홍규

[책소개보기]​


저자소개

 

조정진

<세계일보> 논설위원. 서강대 국문과·언론대학원,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서 공부했다. 1988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세계일보> 문화부장, 한국기자협회 기획위원장, 동덕여대 강사, 월간 <신문과방송> <국회도서관보> 편집위원, 시사통일신문 대표 겸 편집국장, 열린포럼21 대표를 역임했다. 기자협회·서울시교육청 저널리스트 멘토로 4년째 활동 중이다.

농촌농민문학상(1986)·한국신문협회장상(1993)을 수상했고, 이번 책의 근간이 된 <골프채 업자에 놀아난 민홍규 죽이기게이트>(2013)<가산 이효석 선생의 혈육을 만나다>(2014)로 기자협회 취재 이야기’, ‘기자의 세상보기공모에 당선됐다. <한국언론공정보도투쟁사> <한국신문필화사>를 펴냈고, <왜 정부는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가>를 번역했다.

 

 

 

추천사

 

나는 민홍규의 무죄를 확신한다. 명확한 증거들이 있음에도 이를 배척한 사법부의 판단을 이해할 수 없다. 몇몇 사기꾼들의 어설프고 조잡한 모함에 놀아난 수사기관은 부끄럽게 여기고 재수사에 나서야 한다.”

- 박찬종 변호사

 

 

변론을 하며 이 사건은 배후에서 누군가가 진두지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민홍규 선생이 어떤 인물이며 얼마나 원대한 뜻을 4대 국새에 담았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 황종국 변호사

 

 

구치소에서 만난 민홍규 선생의 얼굴에서 진실함과 순수성을 느꼈다. 언젠가 그의 무고함이 밝혀지리라 믿는다. 진실은 끝내 승리한다.”

- 안현수 수지광성교회 담임목사·서울구치소 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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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민홍규는 석불의 제자다

 

 

민홍규는 조선시대 옥새전각장의 맥을 잇는 대한민국 1대 국새 제작자 석불(石佛) 정기호 선생으로부터 국새 전통주물기법을 전수받았다. 

수십 년 동안 부단한 실험을 통해 전통주물기술을 복원하여 완성했다

조선시대 옥새 73과 중 40여 과를 복원해 경기도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전에도 후에도 이런 일을 한 사람은 민홍규밖에 없다.

석불의 아들 목불(木佛) 정민조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홍규를 잘 모른다. 아버지의 제자가 아니다고 한 말은 거짓이다

석불 정기호가 만든 1대 국새에 관한 기록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의 옥새전각장 계보도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아버지 석불 유고집 <고옥새간회정도(古玉璽看繪鄭圖)>을 자신이 아닌 제자 민홍규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한다

이 또한 누군가가 목불과 민홍규를 이간질하였다는 것이 목불을 만나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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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왜 전통기술의 시연을 막는가

 

 

경찰과 검찰은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가 무죄로 밝혀지자 민홍규를 전통기술 부재로 몰아갔다

민홍규를 기필코 구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종의 미션을 수행하는 듯했다

민홍규는 수사 초기부터 줄곧 공개 시연을 주장했다. 시연만 하면 금세 진실이 판가름 날 간단한 일을 검찰과 재판부는 기를 쓰며 전통기술이 없다는 것으로 몰고 갔다.

민홍규가 전통기술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민홍규 죽이기에 가담했던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민홍규가 죽어야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뭔가 거대한 권력이 뒤에서 조종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민홍규는 수감 중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어디 가겠느냐며 출소 후 공개 시연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담담하게 3년 형기를 다 채우고 20139월 출소했다.

민홍규의 국새 제작 전통기법은 거푸집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석고로 하는 현대기법과 달리 전통기법의 재료는 진흙이다. 석고거푸집은 섭씨 1,000도 이상 가열(소성)하면 깨지지만, 진흙거푸집은 2,000도 이상 가열해도 깨지지 않는다.

전통 항아리처럼 숨을 쉬는 진흙의 고유한 성질 때문이다. 이창수가 비법인 양 주장하는 주물은 액체를 거푸집에 붓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하다. 비법과는 거리가 멀다.

제보자들이 집요하게 알아내고 싶었던 것은 민홍규가 가진 비법이었다. 하지만 민홍규는 목숨보다 소중한 비법을 알려줄 수 없었다. 차라리 교도소를 가더라도 비법은 공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민홍규는 백악관이 코카콜라를 주문하면 코카콜라만 납품하면 되지, 코카콜라를 제작하는 비법까지 알려줄 의무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국가가 한 장인에게 국새 하나를 주문하고 그 비법까지 공개하라고 하면 그것은 공권력의 횡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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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리뷰 5]40억 다이아몬드 옥새 진품은 따로 있다[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 책과 세미나 소개 - 2014. 8. 25. 21:47

출판사 리뷰

“40억 다이아몬드 옥새 진품은 따로 있다

롯데백화점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도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다이아몬드옥새 전시회는 두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6년 재료비만 30억 원어치가 들어간 진짜 다이아몬드 봉황옥새 전시회였고, 두 번째는 2009년의 인조 다이아몬드 옥새 전시회였다.

2006년 전시품은 맞춤 주문한 재일교포 사업가 S씨의 이름이 새겨진 진품인 반면, 2009년 전시품은 민홍규가 훗날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만든 이미테이션 작품이다. 밑면에는 세불문화재단이라 새겨져 있다.

이것도 행정보조 박희웅의 농간으로 빚어진 억울한 사건이다.

박희웅이 롯데백화점 전시회를 하고자 하니 인조다이아몬드를 내어달라고 한다. 민홍규는 진품이 아니라 안 된다고 하였지만 박희웅이 자신이 다 알아서 하고 나중에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주면 된다고 하여 전시하도록 내어주었다.

모든 일처리를 박희웅이 했고 민홍규는 전시회 중에 잠깐 들렀다. 그런데 나중에 박희웅은 민홍규가 다이아몬드라고 하였다는 사실도 모른다고 거짓진술로 일관하며 민홍규에게 뒤집어 씌웠다.

롯데 담당자들이 민홍규의 입장을 진술해주었지만 재판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희웅의 요구로 전시회를 가졌고, 어쨌든 민홍규는 주문이 들어오면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작해주려 했던 것을 수사기관은 200만 원짜리를 40억 원에 팔려고 했다며 사기로 단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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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리뷰 4]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 책과 세미나 소개 - 2014. 8. 23. 15:32
출판사 리뷰

 

국새사건의 발단은 황금퍼트사업이다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후 그 밑에서 일하던 행정담당 박희웅은 골프퍼트 제작업자 박준서와 함께 황금퍼트 사업을 하기로 한다. 그들은 국새장인이 만든 퍼트라는 이력이 필요해 민홍규를 동업자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를 거부하자 민홍규 대신 이창수를 내세우기로 한다.

이창수에게 민홍규에 버금가는 스펙을 만들어주어야 했기에 먼저 <국새백서>의 이창수 자격을 조작하였다.

여기에 <국새백서> 제작을 담당했던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와 행정자치부 일부 공무원 등도 연루되어 있다.

황금퍼트를 홍보하기 위해 이창수는 조선조 옥새 복원 등 민홍규의 이력을 자신의 것인 양 도용했다.

민홍규는 <국새백서>의 조직도가 사실과 다르게 인쇄되어 나오자 이의를 제기했고, 이를 껄끄럽게 여긴 관련자들이 민홍규 죽이기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민홍규를 고발하기 위해 1년을 준비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민홍규를 제거한 이유가 국새를 만든 장인이 따로 있다고 하여 그 스펙을 이용해 황금퍼트사업을 홍보하고 판매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속셈이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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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리뷰 3]국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 책과 세미나 소개 - 2014. 8. 21. 13:08

출판사 리뷰

국새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국새사건은 정치적 성격도 있다. 이명박정부가 민간인 사찰과 4대강 문제로 수세에 몰린 정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다.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행정안전부는 4대 국새를 폐기하고 5대 국새를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참여정부 때 만든 국새를 의도적으로 폐기처분하려 한 저의가 읽혀진다. 국새가 제작되던 시기인 2007년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한명숙 총리와 정동영 장관, 이미경 의원을 겨냥한 표적수사에 공을 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금도장 로비설의 실체가 여기에 있다. 민홍규가 4대 국새를 만들 당시 이들에게 금도장으로 로비하여 국새제작단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도장 로비설로 인해 민홍규는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만들었지만 막상 아무리 엮으려 해도 실체가 없었고 무혐의 처리가 되었다.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1427일 국회의원 재보선 때는 분당에 출마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표적으로 삼기도 했다. 검사는 민홍규에게 손학규한테 금도장을 바쳤다고 하면 수사자료를 모두 소각하고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당시 정부가 민홍규를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 명백히 드러난 사례다. 앞서 한 검사는 민홍규한테 나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옥새를 제작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충고한 일도 있다.

 

이에 대해 민홍규는 내가 만든 4대 국새가 단지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지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나는 한 사람의 예술가일 뿐이다. 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길 바란다며 자신을 한 사람의 예술가로 남고 싶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국새는 민홍규가 만들었지만 대한민국의 상징물이다. 과거 왕조시대 땐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다. 국새는 한 나라의 도장 이상의 의미가 있고, 나라의 흥망성쇠를 따지는 귀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국새를 가지고 장난친 국새사건의 연루자들은 반드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 엄벌해야 한다.

    

 

이 책은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행정부와 사법부의 엉터리 수사의 문제점, 허위의식 등을 고발하고자 쓰여졌다. 그리하여 정부기록원 수장고에 잠들어 있는 4대 국새의 권위를 회복하고, 대한민국의 실추된 명예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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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리뷰 2]이창수는 왜 거짓증언을 일삼는가[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 책과 세미나 소개 - 2014. 8. 20. 10:16

출판사 리뷰

이창수는 왜 거짓증언을 일삼는가

  

 

국새사건의 불을 지핀 사람은 민홍규가 국새제작단에 주물보조로 고용한 이창수(종로에서 반지 등을 주물해주던 일을 함)였다. 이창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현대식으로 만든 국새를 민홍규가 바꿔치기해서 국가에 납품하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시작으로 행정안전부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며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창수는 국새제작단에서 15일 일하고 급여로 126만 원을 받은 말 그대로 보조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4대 국새 공모전에 조각과 글씨 부문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작가는 민홍규이고, 국새제작단장과 총괄책임자도 민홍규였다.

주물보조에 불과한 국새제작단의 일개 단원이 국새를 만들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러나 언론은 그렇게 보도했고, 경찰과 검찰은 그렇게 수사해 기소했고, 재판부는 그렇게 판결했다. 취재도 엉터리, 수사도 엉터리, 판결도 엉터리였다.

제보자 이창수는 방송 인터뷰, 수사기관에서의 진술뿐만 아니라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해서도 지속적으로 진술을 번복하였다

이창수의 거짓 증언의 압권은 2007121일과 2일 국새 제작 장소인 경남 산청에 가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창수가 그날 현장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국새사건의 진위를 판가름하는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그날 이창수는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 때 옆에서 주물을 도왔고 그것이 확인되면 민홍규가 국새를 만든 것이 사실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창수는 처음엔 123일 아침에 산청에 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주물하는 과정을 본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2일 이창수가 현장에 있는 사진을 증거자료로 제출하자 122일 밤늦게 도착해 3일 개물식 행사에만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1일에도 이창수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진을 제출하자 급기야 사진의 날짜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국립과학수사원에 사진조작여부를 의뢰한 결과 조작 흔적이 없다고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국과수의 감정결과가 재판에 도움이 안 된다며 무시한 채 민홍규를 구속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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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리뷰 1] 민홍규는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다[누가 국새를 삼켰는가] - 책과 세미나 소개 - 2014. 8. 18. 11:09

출판사 리뷰

    

민홍규는 여론 재판의 희생양이다

 

20108월 말 터진 국새사기사건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뜩이나 짜증나 있던 국민을 화나게 했다. 국새사건은 대한민국 4대 국새의 제작단장을 맡았던 민홍규가 국새를 만들고 남은 금을 빼돌려 금도장을 만들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용으로 돌렸다는 언론보도로 시작됐다.

여기에 600년 비전(秘傳)이라는 전통기술이 없으면서 전통기법으로 국새를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했고, 국새에 버젓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데에 이르러 여론은 절제력을 잃었다.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은 끝났다. 민홍규는 파렴치한 사기꾼이고 국가를 농락한 국사범이 되어 있었다. 민홍규 관련 기사와 수사는 국새제작단의 주물보조를 지낸 제보자 이창수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민홍규에게 제기된 의혹은 마치 모든 게 사실인양 보도됐다. 언론들은 최소한의 확인 과정도 거치지 않고 연일 대서특필했다. 민홍규의 입장이나 진술은 단 하나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수사는 제보자의 진술을 언론이 먼저 보도하고, 수사기관이 그 뒤를 따라 확인하는 수순으로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여론재판이자 마녀사냥이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처리였다. 냉정한 이성과 법리가 지배해야 하는 법정은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

수사 결과, 민홍규의 금 횡령과 금도장 로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기소조차 안 되었거나 재판 과정에서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국새사건을 맡았던 한 검사는 판결 후 민홍규에게 우리가 한 게 아니다. 언론이 떠들고 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 감정은 없다고 했다. 검찰 스스로 여론에 끌려 다녔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민홍규는 자신이 전통기술이 있음을 시연하여 보이겠다고 하였지만 이를 묵살당한 채 전통기술 없이 국새를 제작한 사기라는 죄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왜 민홍규의 전통기술 시연을 막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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