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자서전 출간기념회 소식을 매일 접하면서 이제 본격적인 선거철에 접어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심히 살았고, 성공한 인생을 후세의 사표로 삼기 위해 자서전을 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누가 봐도 부끄러운 인생을 자화자찬하는 식으로 자서전을 내고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자서전 쓰기 열풍을 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서 적어 본다.
첫째 자서전을 자신이 직접 집필하였느냐는 것이다. 한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 언제 시간을 내서,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조차도 최소한 몇 개월 이상을 꼬박 투자해야 하는 일을 밥 먹을 시간조차 없는 사람들이 그것도 단기간에 하였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전문작가가 대필을 하였는데, 자신의 저서라고 표기하는 것은 사기행위이다. 외국의 유명 정치인이 자신의 자서전을 직접 쓰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다. 대부분 전문작가가 당사자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자료를 수집해서 객관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고, 저자도 전문작가가 된다. 유명인의 자서전만 전문적으로 집필하는 작가가 따로 있을 정도로 시스템화되어 있다.
둘째 자서전에 묘사된 인물이 천편일률적으로 고대국가의 신처럼 받들어지는 영웅의 일대기와 너무 유사하다. 내용을 보면 대체적으로 우국충정과 애국애족의 정신이 투철하고 어려서부터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는데 정작 현재의 하는 행동거지를 보면 시정잡배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바른 정치를 한답시고 떠들지만, 결국 모두가 가는 곳은 감옥이다. 유명인의 자서전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귀감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기대를 하기란 어렵다. 대한민국에서 출세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안되고, 유명인사가 되려면 교도소 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진실을 은폐하고, 무조건 결백한데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었다고 항변하는 것이 생존전략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정직한 것이 아닐까? 참 낯도 뚜꺼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 본인이 자서전의 내용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전문작가에게 맡겼다고 해도 최소한 내용은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책 내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대부분 책의 내용조차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도 자화자찬식의 성과 부풀리기나, 황당무계한 공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말 자신이 수십 년간 고민한 내용이라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 저곳에서 남의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어설프게 짜집기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주관적이고 황당한 내용으로 가득찬 책이 후세에 남겨 교훈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의 유명 정치인의 자서전은 수십 만부가 팔리고, 전세계에 번역되어 읽힌다. 하지만 한국 정치인의 자서전은 선거철에 자기들끼리 자화자찬하다가 바로 사라진다. 가치가 있어서 돈을 주고 샀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잘못 알고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국민은 유명 정치인이 신처럼 완벽하거나 무궁무진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어야 된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학자들처럼 세상만물의 이치를 통달하고, 세상을 보는 혜안이 있을 것이라고도 기대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뭔가 부족해도,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바른 정신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최소한 자신을 속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도 속이지 않는 정직함만 가지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뭐가 급하고 무엇에 홀려서 허무맹랑한 작태를 중단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을 속이는 것도 부끄럽지 않는 사람들이 국민과 세상을 속이는 것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은 강 건너 불을 보듯 뻔하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세상에 부끄러워 하늘을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이 능력인양 당당하다. 이런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단어가 조선의 청렴한 선비들이 자신을 다스렸던 신독(愼獨)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도리(道理)에 어긋남이 없도록 한다는 말이다. 남이 볼 수 없는 어두운 방안에서조차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그 자세를 말한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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