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수험신문 · 고시위크 | 2018.08.20 14:28 입력
(2) 국가정보원은 어떤 일을 하는가
지난 8월 8일 개봉한 영화 ‘공작’의 관람객이 10여일만에 34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흑금성이라는 공작원이 실존 인물이고, 유능한 대북 공작원이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는 줄거리가 청년층을 포함해 많은 관객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영화에서 흑금성이라는 공작원이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 김정일의 고모부인 장성택 등을 포함해 주요 권력자를 만났고, 남한 가수 이효리와 북한 무용수 조명애가 중국에서 휴대폰 광고를 같이 찍는데 기여했다는 줄거리도 흥미롭다.
특히 가수 이효리는 90년대의 원조 아이돌 가수이지만 한동안 대중에 잊혀졌다가 최근 한 종편의 방송 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집’으로 인기를 얻어 흥밋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섭외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냥 흘러간 가수에 불과했다면 감독이 자필 편지를 쓰면서까지 공을 들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흑금성을 활용한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가 주도한 대북공작은 국가정보기관이 하는 업무 중 하나인 ‘정보활동’에 해당된다. 흑금성이 국가정보학자들이 정의하는 흑색정보요원(illegal officer)인지 아니면 단순한 공작원(agent)인지 판단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비밀공작활동 중 경제공작에 가까워
국가정보기관의 활동영역은 정보활동(Intelligence Process), 방첩활동(Counterintelligence), 비밀공작활동(Covert Action) 등 3가지이다.
첫째, 국가정보기관의 정보활동은 정보의 기획(Planning), 첩보의 수집(Collection), 정보분석(Analysis), 정보생산(Production), 정보배포(Dissemination) 등의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정보기관마다 정보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의 구성, 임무의 배분 등은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하는 업무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정보의 기획은 국가안보를 보호하고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과정이며 국가정보목표우선순위(PNIO)와 첩보기본요소(EEI)의 형태로 정리된다. 국가정보기관은 조직의 임무에 따라 주어진 정보 수집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첩보의 수집은 인간정보(HUMINT)와 기술정보정보(TECHINT)의 수단을 동원하고, 정보분석은 수집부서에서 수집한 첩보를 정보소비자(consumer)의 정보 니즈(needs)를 충족할 수 있도록 해석하는 일이다.
정보생산은 정보분석 임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에서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소비자의 특성에 따라 구두보고, 브리핑, 요약보고, 종합보고 등에 필요한 형태로 보고서를 구성한다.
정보배포는 생산된 정보보고서를 정보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업무다. 배포선의 확정은 정보의 비밀성을 유지하거나 정보실패(Intelligence Failure)를 방지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둘째, 방첩활동은 국가정보학자마다 분류하는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 적극적 방첩활동과 소극적 방첩활동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적성국가나 스파이(spy)에 대한 정보수집, 역용공작, 기만공작 등이 포함된다. 정보기관이 타국 정보요원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타겟(Target) 국가의 정보수집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목적이다.
역용공작은 타국의 정보요원을 포섭해 이중공작원(double agent)으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약점을 잡아서 협박하거나 금전적인 보상책으로 유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적 성향, 부정부패, 여성편력, 범죄행위 등이 활용할 수 있는 약점에 해당된다.
기만공작은 고난이도의 공작기법이 필요하고 많은 예산과 시간을 동원해야 가능해 현실적으로 활용사례는 많지 않다. 소수의 사람을 속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수의 대중이 기만 대상이 되거나 아군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 기만공작의 성공은 보장받기 어렵다.
셋째, 비밀공작활동은 미국의 정보공동체(Intelligence Community)가 분류한 기준에 따라 선전공작(Propaganda), 정치공작(Political Activity), 경제공작(Economic Activity), 전복공작(Coups), 준군사공작(Paramilitary Operation) 등 5가지 구분할 수 있다.
비밀공작은 폭력의 정도, 위장부인의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며 폭력의 정도가 가장 높으며 위장부인이 어려운 비밀공작이 준군사공작이다. 실제 공작요원들이 공작 목표지점에 투입돼 살인, 방화, 파괴, 납치 등의 활동을 수행한다.
반면에 선전공작은 위장부인의 정도가 높으며 폭력의 정도는 가장 낮다. 백색선전, 회색선전, 흑색선전 등의 종류가 있으며 주로 정보기관은 흑색선전을 담당한다. 백색선전은 선전내용을 유추하면 쉽게 출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홍보처와 같은 일반 정부기관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세계 각국이 선호하는 비밀공작은 경제공작이다. 정치공작은 대상국의 정치상황에 간섭해 외교적 마찰을 초래할 수 있고, 국제적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1978년 미국과 중국의 국교정상화, 1991년 소련의 붕괴 등으로 인해 사회주의 진영과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결 필요성이 감소한 것도 정치공작이 사라진 배경이다.
하지만 경제공작은 통상마찰이나 무역정책이라는 명목으로 행해질 경우에 대상국이 불만을 터트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선호한다.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도 ‘중국 굴기(堀起)’를 주도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경제공작에 가깝다.
미국의 관세보복으로 시작된 무역전쟁은 중국의 보복관세 부과, 다시 미국의 관세품목 확대에 대한 중국의 상응조치 등으로 진전되면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미국과 협상으로 무역전쟁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여 중국의 자존심을 한껏 고양시키겠다는 시진핑의 정치적 야심이 무너지면 그의 권력 기반도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해야 하는 미국 정부의 비밀공작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직무에는 선진국 정보기관과 달리 비밀공작은 포함되지 않아
한국 국가정보원의 직무는 ‘국가정보원법’ 제3조에 명시돼 있는데, 세부 내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배포
②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지역에 대한 보안업무
③ 형법 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 중 반란의 죄, 암호부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④ 국가정보원 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수사
⑤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조정
우선 국가정보기관의 업무인 정보활동, 방첩활동, 비밀공작활동 등 3가지 활동영역을 기준으로 한국 국가정보원의 직무 5가지를 분류할 필요가 있다.
법에 명시된 ①의 직무는 정보활동에 포함되지만 ②~④의 업무는 방첩활동이다. ⑤의 직무는 국가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국가부문정보기관인 경찰청, 검찰청, 정보사, 기무사, 사이버사 등과 정보활동과 방첩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권한의 일부분이다.
국가정보원의 모태인 중앙정보부는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부가 군대 내부의 반쿠테타 세력을 파악하고, 국민의 반정부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립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률에 규정된 직무의 특성을 이해하기 쉽다.
현재 국가정보원의 5가지 직무를 보면 최소한 3가지는 방첩활동에 관련돼 있다. 하지만 조직의 구성이나 인원의 배치 등은 통상적인 방첩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정보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정보기관의 특성을 나타낸다. 법률상 직무와 실제 하는 업무의 부조화가 발생한 이유다.
다음으로 특이한 점은 다른 선진국의 정보기관과 달리 국가정보원은 공식적으로 비밀공작을 수행할 수 있는 근거를 직무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공작’에 등장하고 북한의 최고 권력층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가 파견한 흑금성은 학술적으로 비밀공작원이 아니라 비밀정보요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국가정보원의 직무에 비밀공작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국가정보원이 북한이나 주변 국가를 대상으로 선전공작 등을 수행하지 않았거나 향후에도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개인숭배와 권력세습이 부정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3대 세습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 정치체제를 비난하고,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유도하는 업무는 한국 국가정보기관의 고전적인 선전공작 일환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정보원이 수행하고 있는 국외정보의 수집 대상국가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란도 해소되지 않았다. 남북한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치를 지속한지도 어언 70년이 넘었고, 한반도 주변 4강의 정치적 간섭과 군사적 압박도 만만치 않은데 대북정보에 중심을 두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국외정보의 수집대상을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4강이나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 주변 국가로 확대하려고 한다면 국가정보원이 정보수집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정보활동에 필요한 정보자산(asset)을 해당 국가에서 확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선진국 정보기관도 국외정보수집 능력을 확보하는데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하고도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소요됐다. 정보 후진국인 한국이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이유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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